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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Oct 12. 2018

좋은 부모라면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죠.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너의 인생 책이 궁금해.



인생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각보다 한참을 고민했다. 학창 시절 내 가슴을 뜨겁게 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도 떠올랐고, 나의 영혼의 친구인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도 떠올랐다. 인상 깊은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에 오랜 시선이 머물렀다. 무겁고 불안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겼던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였다.





이제껏 많은 기사와 책과 남겨진 기록들이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에 주목해왔다. 피해자의 눈물, 피해자 가족의 연대, 그들의 아픔… 그런 와중에 '가해자 엄마'를 신경 쓸 겨를은 있을 리 없었다. 한 번도 집중해본 적 없던 대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움과 증오의 화살이 빠르고 따갑게 가해자를 향해 날아갈 때, 심지어 가해자는 죽고, 가해자의 가족들만 남았을 때, 갈 곳을 잃은 화살은 가족들을 향해 날아간다. 원망과 비난과 분노와 혐오의 화살들. 가해자의 어머니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지울 수 없는 그 꼬리표를 달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은 자들의 연대'에 '가해자의 남은 가족'이 끼어들 자리는 별로 없다.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의 가해자 딜런의 엄마 수의 말대로, 그 어떤 피해자와 제3자도,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의 '위로만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의 제목인 '좋은 부모라면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알죠.'는 책을 읽기 전의 단상이고, 글의 부제인 '정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는 책을 읽고 난 이후의 생각이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가해자 아들이 이 땅에 두고 간 수많은 잔흔과, 피해자와 가해자를 포함한 모든 남겨진 이들의 눈물과, 어디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가해자 가족의 그림자들이 정교하게 만나 커다란 섬을 만든다. 그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고립된 섬, 그 무엇과도 쉽게 이어질 수 없는 외딴 섬. 섬이 된 수의 생각들은 고통스럽다.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들을 결코 알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미안함과 불안감, 속상함과 서운함이 켜켜이 쌓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이 생각났다. <종의 기원>에는 사이코패스의 잠재력을 지닌 아이, 유진이 등장한다. 유진의 부모는 언젠가 아이가 끔찍한 괴물로 자라날 것이라는 진단 혹은 심판을 받는다. 유진을 바르게 잘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 고민하는 부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이 될 운명에 닥쳐버린 유진.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에는, 괴물이 될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의 고민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가 어려웠다. 내가 만약 그 아이의 부모라면, 나는 과연 그런 아이를 온전히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모든 희생을 다해 두려운 내일을 감내할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막막한 두려움이 눈 앞을 캄캄하게 만들곤 했었더랬다.


이 책은 실제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주동자였던 딜런의 어머니가 쓴 책이다. 전자의 책이 ‘끔찍한 소설’이었다면, 이 책은 ‘끔찍한 소설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전자의 어머니가 괴물이 될 아들의 잠재력을 안 뒤 이후의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힘썼다면, 후자의 어머니는 그 누구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는 제 목숨마저 끊어버린 말 없는 아들의 삶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어버렸던 아이, 그 아이가 남기고 간 모든 비극의 상흔을 헤아리기 위한 회고와 되짚기의 과정.



우리가 정말 달아날 수 있을까.
딜런의 손이 만들어낸 끔찍함에서
벗어날 길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진실로부터,
그 낙인으로부터 멀어질 수는 없었다.
어디로 가든 이 공포스러운 현실은
우리를 따라올 것이다.



1부의 내용이 '살인한 아들'에 초점을 둔다면 2부의 내용은 '자살한 아들'에 초점을 옮긴다. 나는 가해자 딜런의 살인 경위보다 딜런이라는 사람의 자살 경위를 되짚는 과정이 더욱 힘겹고 괴로웠다. 자살은 생에 대한 포기다. 무엇이 그들을 포기하게끔 했는지,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게 만든 것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와 가슴이 저렸다. 그리고 주변을 꼭꼭 씹어 되돌아봤다. 다시는 어떤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리는 친구의 죽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누군가 내게 보내고 있을 은밀한 사인을 놓치고 있던 건 아닌지, 나의 게으르고 무딘 무지가 누군가의 남은 희망을 좀먹고 있는 건 아닌지 싶은 생각이 들어 초조해졌다. 자살이 분명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더 늦기 전에, 최선을 다해 그들을 꼭 안아줘야만 하니까.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에게는 너무 늦었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으니까.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만 해도, 내가 '만약 부모가 된다면 나는 과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에 관한 고민만으로 구절구절을 접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명한 엄마 수조차도 몰랐던 딜런의 그림자와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만나면서 그 고민은 더욱 입체화되고 깊어졌다. 지혜로운 양육 방식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주어진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를, 그러한 건강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살아남기를 불안해 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는 말한다. '왜'만 물으면 무기력한 상태로 남지만 '어떻게'라고 물으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441p)고.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불안한 감정이 단단하고 뜨거운 책임감으로, 내 사람들을 지켜내고 말리라는 굳건한 의지로 확장된다. 사랑하는 나의 가정과 친구를 위해, 우리의 지혜로운 사회 공동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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