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연휴 끝에서

by 천진의 하루

오늘 아침도 느지막이 일어났다.

연휴가 길어지면 일상이 무뎌지고 느슨해진다.

출근 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잠을 잔다고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의 마음만이 이래도 되는가를 묻고는 할 뿐이다.

그것도 잠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토닥인다.

자기 계발서를 읽다 보면 그렇게 느슨해지고 나태해지면 큰일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아서 스스로를 책망하고 비관하게 된다.


한동안 그랬다.

주말이나 연휴에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면 괜히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잃은 것이 많아진 것 같았다.

요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그런 모습도 나인 것을 말이다.

평일보다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눈을 뜨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잃는 것만 생기는 것이다.


영화도 봤고 다른 활동을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책으로 하루가 정의돼 버리는 것이다.

나의 하루는 어찌 되었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지금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삼 일간의 휴일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내 삶이고 오늘의 늘어짐도 내 삶이다.

그 안에서 다른 것을 얻고 배우며 살고 있을 뿐이다.


넷플릭스에서 '사채 소년'이라는 영화를 봤다.

부모가 사업에 실패하고 잠적했다.

부모는 사채를 썼기에 사채업자는 소년에게 부모의 위치를 다그친다.

소년은 학교에서도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사채업자의 꾐에 소년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채를 빌려주고 걷어들이는 일을 한다. 약자였던 소년은 어느덧 학교에서 강자가 된다.


영화를 보며 옛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고 당시에는 영화 같은 괴롭힘은 없었으나 용돈을 뜯어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자주 가진 것을 빼앗기는 쪽이었다.

당시는 작은 일탈 정도였는데 영화 속의 괴롭힘은 너무 했다.


문득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름 성실하고 열심히 사셨고 큰 실패도 없었기에 어려움 없이 성장하게 해 주신 것이다. 영화의 소년과 소녀처럼 부모의 실패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스스로 삶을 챙겨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은 것 만도 감사한 일이다.


나도 지금까지는 아이들에게 그런 시련을 주지 않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모든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막다른 벽에 부딪혔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인생은 선택을 어떻게 하는 가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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