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추억

by 천진의 하루

저녁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시내로 나왔다. 학창 시절 이 거리는 차량이 지나는 도로였다. 버스를 타고 이 도로를 빠져나가는데 한 시간가량 걸렸던 기억도 있다. 내가 살던 곳의 모든 차량이 지나는 도로여서 언제나 붐볐던 곳인데 도로가 폐쇄되고 광장이 들어 선지도 10년이 넘은 것 같다.


도로는 젊음이 넘치는 거리로 변했고 주말이면 각종 공연도 이루어진다.

나는 이곳에 잘 나오지 않은지도 오래 되었는데 생활권이 아니기도 하고 일부러 찾을 곳도 아니어서이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 보니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거리에 학창 시절 알던 장소는 대부분 없어졌다. 그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은 서점 하나뿐이다. 학창 시절 내가 살던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던 곳인데 책은 물론이고 문제집을 구할 때도 이용을 했던 서점이다. 반가운 마음에 서점에 들러 진열된 책들 사이로 유영을 했다.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을 하나씩 펼쳐보며 어떤 분류의 책들이 있는지 보았다.

요즘은 쇼펜하우어의 책들이 많아진 느낌이다. 철학책은 어려워 잘 읽지는 않는데 여러 권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시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손이 가지는 않았다.


책방을 나오며 가벼운 웃음이 지어졌다. 책방에서 책을 산 기억은 이제 오래되었다. 인터넷을 통하면 쉽게 구입할 수 있고 할인도 되며, 또 전자책화되면서 휴대폰으로도 다양한 책을 볼 수 있어지기도 해서이다. 점점 종이책의 구매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책장에 늘어나는 책을 보면 즐거운데 아내는 질색을 한다. 내 서재는 없어지고 책장도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러니 책을 구매하기보다 대여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종이책을 만지고 넘길 때 나는 사브작 소리는 참 좋다.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많은 책의 책장을 넘기며 기분이 좋다. 학창 시절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서점이 아직 건재해줘서 고맙다. 그 서점에서 구입했던 영문판 사랑의 기술은 오십이 넘어서야 한글판으로 읽었는데, 학창 시절 연애 스킬을 알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읽어내지 못한 책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인 것을 알게 된 것도 오십이 넘어서인 것이다.


그 서점에서 제법 여러 권의 책들을 구입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동네에 서점을 찾기도 어려워졌는데 잘 버텨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해간다. 기억도 변해가고 삶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그 속에서 지나간 추억은 그 자리에서 옛 향수를 일깨워줘서 반가웠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