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다가오는 말들

by 천진의 하루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는 네번째 책이다.

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말들'이라는 제목에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이 책은 은유 작가님의 독서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님이 읽은 책들에 밑줄그었던 말들을 포함해서 에세이를 작성해 놓았다.

읽으며 감탄이 나왔다.

독서록이라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책에서 느낀점을 기록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책에서 읽은 구절을 새로운 것들과 연결해 글로 만들어 냈다.

자신의 경험과 책에서 깨달은 통찰을 짙게 녹여낸 글들이었다.

나도 작가의 글 한꼭지 한꼭지에서 밑줄을 긋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글을 써도 고통스럽고 글을 안 써도 고통스럽다.

그러면 쓰는 게 낫다.

뭐라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비 오는 날도 해 뜨는 날도 그냥 날씨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좋은 날씨 궂은 날씨 구별하는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삶의 어떤 국면을 좋음과 나쁨으로 가르는 것도 지극히 관습적이고 현재중심적인 판단이라고 여겼다. p29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p42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어떤 목표에 사로 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p47


글쓰기는 창작이나 발명이라기 보자 발견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합니다.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p75 우치다 다쓰루<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지만 공부하면서 사람답게 살기는 퍽 어렵다.

공부든 일이든 하나의 목적성에 갇힌 사람은 앞만 본다.

관계를 놓치고 일상을 망친다. p100


"개인이 가난해서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빚을 지는 것이다." p125 천주희<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침묵은 정지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하지 않으려 언어를 고르는 시간, 글을 쓴 이의 삶으로 걸어들어가 문장들을 경험하고 행간을 서성이고 감정을 길어내는 활발한 사고 작업의 과정이다. p148


그걸 말하지 않으면 모르나 싶지만 정말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 남의 고통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무얼 하지 않아도 세상엔 별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이다. p173


"용서의 핵심은 짐을 덜되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거야.

그 짐이 원래 그 사람의 몫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p178 토르디스 엘바<용서의 나라>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p179


글은 자기 생각을 의심하는 일이고, 말은 자기 확신을 전하는 일이다. p191


"작은 조언도 큰 이론도 자신의 몸으로 영접하지 않은 한 자신의 앎이 되지 않는다.

내용 없는 희망은 불행을 대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 그 불행의 씨앗이 된다." p275 황현산<잘 표현된 불행>


삶의 무수한 타인과 연결돼 있으나 도통 만나지 못한다.

단조로운 일상의 동선을 태엽 인형처럼 왕복하며 보는 사람만 보고 가는 데만 간다.

살면서 직접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p277


잘산다는 건 내 일상을 오래 묵묵히 지켜본 사람을 갖는 거구나.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이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나마 막막한 질문만이 숨길을 열어주고 살길로 인도한다. p281


글은 정자세로 앉아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목뒤부터 어깨를 타고 손끝까지 흐르는 저림을 겪으며 문장의 길을 터나가야 한다. p320


상황과 조건을 무시하고 절대명령처럼 주어지는 도덕을 비판하며 자기 삶의 조건에서 선악을 재정의하고 좋은 마주침을 조직하라고 권한다. p328


애써 말해야 하는 삶들이 있다.

말해질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 권력이고, 말해질 기회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이다.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거리가 먼 존재일수록 말해지지 않는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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