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구의 증명

by 천진의 하루

왜 제목이 구의 증명일까?
증명이란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구의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 속에는 구와 담, 노마, 진주 그리고 담이 이모가 등장인물로 나온다.

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모의 빚을 떠앉았고 사채업자의 빚독촉을 피하며 가난과 싸우고 사랑하는 담이와의 평범한 삶을 살며 '울트라 캡숑 아빠'가 되고 싶어 했다.

구는 사채업자에게 붙잡혀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탈출해 담이에게 돌아가던 도중에 죽는다.

담은 할아버지와 살다가 돌아가신 후 존재를 모르던 이모와 산다.

구와 담은 어릴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며 커가면서 사연스럽게 연인이 된다.

소설은 지독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소설 속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라는 담이의 말은 불행함 속에도 서로의 존재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말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졌다.
힘들어도 꾸역꾸역 살아야하는 우리들의 인생을, 그 안에서의 사랑의 비참함이 느껴졌다.
나라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는 담에게 자신을 떠나야 한다고 울부짖기도 한다.

하지만 구가 지치는 삶 속에서 유일하게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담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구가 하고자하는 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담이의 곁에 가고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은 구가 자신의 곁에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담이의 이 독백은 요즘 수저론에 한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삶의 진로에 내 삶은 결정되어져 있고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암울함이 느껴졌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희망은 가끔 인간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잘 될꺼라는 희망을 붙잡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굴레를 계속 돌리는 다람쥐 마냥 인간은 그 커다란 챗바퀴를 있는 힘을 다해 돌린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후에야 희망은 고문에 하나라는 것을 인식한다.

저자는 구의 말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희망 고문에 빠지지 말고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담이가 구의 시체를 먹는 설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시작은 멸망해가는 지구에 구와 담이 남겨지고 인간의 시신이 다른 의도로 쓰이지 않도록 담이 구의 시체를 먹는다는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판타지의 영역으로 책을 생각하고 접근했던 것이다.

책이 끝날 때 쯤 구를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한 담이의 선택이 구를 먹는 것이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담이에 대한 구의 존재 증명이 구의 몸을 먹는 것이어야 했을까하는 물음이 든다.

지독한 가난과 빚에서의 도피를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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