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들 중 몇 분의 글을 매일 찾아 읽는 편이다.
그 분들의 책소개에 올여져 있는 클레어 키건의 책 두 권을 주문했고 첫 번째 책이었다.
짧은 중편의 소설로 100페이지 분량이라 몇 시간만에 쉽게 읽었다.
식구가 많고 임신한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소녀는 친척집에 밭겨진다.
식구가 많고 어려운 살림에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소녀는 맡겨진 집의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따뜻함을 느낀다.
몇 개월 동안 소녀는 집에서 얻지 못하던 것들을 얻게되는 경험을 한다.
나도 어린 시절 맡겨진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일이 바빴고 몸이 불편한 동생도 있었기에 맏이인 내가 부모님을 떠나 외할머니댁에 가 있었다.
도시에서 떠나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혼자 뚝 떨어져 있었던 기억은 별로 좋지 않다.
기억에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산을 넘었던 것 같다.
할머니 집에 도착했을 때 대문 앞을 지키고 섰는 원숭이를 보았었다.(나중에 늙은 개였다는 걸 알았다.)
집 뒤로는 산이 있었고 주변에는 다른 한 집 외에는 없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말 잘듣고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말하고 떠났다.
소녀와 다르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삼촌은 농사일로 분주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집안을 맴도는게 하루 일과 였다.
처음 간 동네라 또래의 친구들도 없었고 무언가를 사먹을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오래 전 잊고 있는 기억이 소환되어서 좋았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도 이제는 잊었지만 어린시절 칭얼대는 나를 재우기 위해 고생하셨던 그 모습은 여전히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젖을 만지고 잠이 들었던 작은 꼬마의 기억은 내게 소중한 것이다.
책 속으로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들,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씻기고 깨워서 성당이나 학교에 갈 채비시키기,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 _19쪽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_25쪽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_30쪽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_30~31쪽
킨셀라 아저씨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고마워요, 밀드러드. 얘를 맡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참 조용하네요, 얘는.”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죠. 이런 애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요.” 아저씨가 말한다.
_67쪽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_69~70쪽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_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