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고전에서 삶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제법 많은 고전을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고전에서 말하는 삶의 가치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두려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답답함을 느낀다.
물론 '논어', '장자', '노자 도덕경', '열자', '순자', '한비자', '맹자' 등 2500년의 성현들의 말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고 도덕적이며 청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성현들의 말이 현실에 적용한다면 과연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삶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문제인 것 같다.
나의 이런 생각에 저자도 같은 말을 한다.
성현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그저 비우고, 극도로 단순해지고,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면서 살아가라고,
물론말처럼 행동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위의 세상에서 무위를 추구하는 것,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선택하는 것,
망상을 쌓아 두기보다는 비워 내는 것, 외면보다는 내면을 정리 정돈하는 것,
경계를 긋기보다는 허무는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응당 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는 것, 날마다 즐거워하는 것.
우리는 이것들을 생각하면서 가끔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 된다.
저자는 나의 의문에 가끔 자신의 삶에 적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품는 의심은 당연한 것이고 성현의 말을 삶에 그대로 적용해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생각은 하면서 살되 가끔은 당신의 삶에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면 적용하면 된다는 말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달라진 부분이 이런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대로 살던 삶에서 문득 떠오르는 성현의 말들에 생각을 한 번 더 하게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끔은 멈추어 서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한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 하고, 자갈밭에 씨를 뿌리려 하고,
모래로 밥을 지어 먹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잠시 멈추고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을 돌아보면 반드시 돌파구가 보일 것이다.
이렇게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지면 잘못된 결정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사례를 읽기 전 '마부작침(磨斧爲針)'이라는 고사성어를 아침에 보았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라는 말인데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공부를 하기 싫어 집으로 돌아오다 냇가에서 도끼를 갈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무엇을 하느냐 물었는데 바늘을 만들고 있다고 했단다. 이백은 도끼를 갈아서 어느 세월에 바늘을 만들겠냐고 비웃었는데 할머니는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바늘이 될 것이라 답한데서 깨달음을 얻고 다시 돌아가 공부에 매진 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비유에서 다른 가르침이 나온다는 것에 놀랐다.
한 비유에서는 정확한 방향과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고 하나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살아가는데 모두 필요한 가르침이다.
나머지 말들도 삶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사용하는 사람,
돈을 벌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나중에는 그 행위로 인해서 오히려 돈을 모으게 된다.
자신의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사로움을 이루는 것이다.
정말 이런 것인지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다만, 내 삶에 충실하게 살아야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저자의 견해에는 동의한다.
속세에 미련이 남지 않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전을 말해 준다고 한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없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알 수가 있지만 인정하기는 힘이 들고 의심이 많이 든다.
마음 편하게 살다가 원 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 것,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 이것이 뛰어남이다.
칭찬도 비난도 그것은 원래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뜨거나 침울해질 필요가 없다.
내부가 변하면 외부가 변하고 내부가 변하지 않으면 외부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기가 힘들다. 모든 것은 내부에서 먼저 비롯된다.
죽음이 두려울 이유는 없다.
죽음이 두렵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이 다가왔을 때 삶에 대한 집착이 생기지 않는다.
나의 삶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충실한 삶을 살았어야 한다는 후회가 삶에 대한 집착을 가져온다. 뭔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아 죽음을 거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여 마음속에 많은 것을 붙들어 매고 있을 필요가 없다.
놓아 버리고 비워 버리면 홀가분해진다.
네 번 먹을 것을 세 번만 먹고, 세 번 고민할 것을 두 번만 생각하고,
두 번 입에서 나올 것을 한 번만 말하면 생활이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소식하는 사람은 병으로 죽는 일이 없고, 고뇌가 적은 사람은 더 행복해지며,
혀를 조심히 놀리면 큰 화를 면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존재하는 상태 그대로 즐거우면 그만이다.
얼마나 더 찾아 헤매려고 하는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가 되었든, 어디를 가서든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이는 감각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리석은 마음에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래서 성주괴공이라고 한다.
세상 모든 물질은 없는 것에서 만들어지고, 일정 기간 머물다가,
줄어들거나 변질되거나 파괴되어 가다가 결 국에는 없어지고 만다.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진리가 존재한다.
만약 살아가다가 형태가 없는 것과 형태가 있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면 고민하거나 갈등하지 말고 형태가 없는 것을 먼저 선택하라.
그것이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