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진 사람이 가난한 이유

by 천진의 하루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아가셨다. 그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스님은 혼자였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비우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삶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려면, 설득해야 할 사람이 많다. 그중 한 사람은 아내다.

부부가 함께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려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도 불필요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흔히 자신보다 아래를 보며 만족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어느 정도 무리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리한 선택이 성공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만, 실패하면 지금보다 더 못한 삶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추락’의 두려움 때문에 무리를 주저한다. “일단 해봐야 안다”는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이, 어쩌면 가진 것을 잃기 두려운 사람들에게는 외려 더 무섭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세네카는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가난한 심정을 만든다”고 했다. 어제 나는 벤츠 전시장에 다녀왔다. 내 형편에 벤츠를 타는 것은 무리지만, 가끔 구경 삼아 매장을 찾곤 한다. 그런데 어제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 부부가 딸과 함께 차를 구경하며, 아이의 차를 사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았다. 전시장을 나서며 아내와 나는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부부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제는 상대적 빈곤을 느낀 날이었다. 우리는 그나마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이것도 나의 욕심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욕심이 내려놓이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참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그것을 ‘목표가 높기 때문’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상반된 생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목표인가, 욕심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행동이 목표가 되려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저 ‘가난하다’는 생각으로 끝나버리면, 결국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많이 가질수록 오히려 더 가난해지는 이유는, 그걸 지키려는 집착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욕망을 ‘목표’가 아니라 ‘욕심’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곧 빈곤감으로 이어진다. 어제 나는 매장에서 그런 패배자의 마음을 품었고, 그로 인해 미안함과 부족함을 느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며 살고자 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도 그런 날을 만들어가기 위한 삶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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