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이기는 것이 맞다.
딸의 자가면역질환에 대하여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라는 이해인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어느 독서 모임에서 저자 강연이 있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기억하고 있던 책이었다. 책은 다정함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저자의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쓰여 있었다.
책의 내용 중 '난기류 비행'이라는 챕터에서 저자는 어머니가 아팠던 것과 자신도 그 질병에 걸리게 된 얘기를 썼다. 평온히 날다가 갑자기 만나는 난기류, 그 위험은 예고 없이 찾아와 혼란에 빠트리고 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이 유능한 기장이 되거나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
부천에서 자취를 하던 딸은 23년 5월,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린다는 연락을 했다. 근처의 내과에서 약을 처방받았는데도 계속된다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휴가를 내고 집으로 오라고 하고 종합병원 내과를 예약하고 입원을 했다. 의사는 포도당과 영양제를 처방하며 맞고 있던 링거를 다 맞으면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퇴원 후 딸은 딸꾹질을 시작했고, 멈추지 않는 딸꾹질 때문에 다니던 회사에 다시 휴가를 내고 집으로 왔다. 그때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딸꾹질을 경험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멈춰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멈췄다 시작했다를 반복하는 딸꾹질로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검사를 했을 때도 그리 큰 질병은 아니라고 의사는 말하며 약을 처방해 주었었다. 약을 먹으면 조금 나아지는 듯하던 딸꾹질이 구토를 동반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원인을 모르는 딸꾹질의 계속과 구토 그로 인한 식이장애는 아이를 메말라 가게 했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계속되는 증상에 탈수증세와 더불어 죽어가는 나무처럼 마르며 서서히 기력을 잃어 갔다. 수액을 맞추기도 하고 인터넷에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나아지지가 않았다.
동네 가정의학과 의사의 권유로 마지막 치료인 딸꾹질을 일으키는 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날 흉부외과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신경을 절단하면 회복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난색을 표했지만 한 달 보름을 병마에 시달리는 딸은 그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다며 짜증을 냈다.
나는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담낭(쓸개)에 돌이 생겼었고 그것의 부유물이 이동하면서 담로를 막아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일으켰었고 담즙이 간으로 역류하면서 황달이 왔었다. 담낭은 없어도 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인체에 있는 것 중 없어도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소화효소를 담아두는 기능을 하는 담낭이 없으므로 과식을 하면 소화를 잘 못 시키기도 하고 묽은 변과 설사를 자주 하기도 했다. 삶에 불편은 항상 상주했고 조심해야 했다.
나의 이런 경험은 앞으로 오래도록 살아야 하는 딸에게 신경을 절단하는 수술이 가져올 위험이 무엇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섣불리 수술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의사가 혹시 '뇌 MRI'를 찍어 보셨는지 물었다. 같은 병원 신경과 진료를 한 달 전에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직 어려서 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MRI를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의사는 자신의 경험 상 뇌에 문제가 생겨도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자신이 신경과에 요청할 테니 뇌 MRI를 찍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수술을 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딸아이를 설득하고 수술 날짜를 잡은 후 수술 전 뇌 MRI를 찍기로 했다.
수술 일정은 일주일 뒤 월요일로 결정되었고, 신경과에 강력히 요청해 수요일 저녁 입원을 하고 MRI 촬영을 하였다. 월요일 2시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금요일 신경과에서 뇌에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정밀 MRI 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정밀 MRI 촬영 결과 뇌에 염증이 발견되었고 병명을 알게 되었다. 딸은 시신경 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난치병의 일종으로 신체의 면역체계가 자신의 신경조직을 적으로 알고 공격해서 발생하는 질병이란다.
자가면역질환, 쉽게 말해 면역력을 담당하는 기관이 오작동이 일어나 자신의 신경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질병의 원인을 알고 나면 치료는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의사는 뇌에 생긴 염증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했고 그 이후 딸꾹질은 멈췄다.
딸은 삼일을 입원해서 척수검사등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다. 지겹게 괴롭히던 고통은 멈췄고 백지장처럼 하얗던 얼굴은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하늘에 감사했다.
병명을 모를 때 검색창에 딸꾹질로 찾을 때는 전혀 나오지 않던 내용이 병명을 알고 검색을 하니 그 질병의 증상 중 맨 마지막에 짤막하게 한 줄로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시신경 척수염이라는 질병의 증상 중 가장 약하게 나타나는 증상이 딸꾹질이었던 것이다. 그 질병의 증상 중에는 '자다 일어났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하반신에 마비가 온다.'라는 무서운 증상의 내용도 있었다.
딸에게는 가장 미약한 증상이 발생했던 것이었다. 만일 신경제거 수술 전에 MRI 촬영을 권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질병의 기미도 놓치지 않고 진료를 하도록 권해주었고 그런 작은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던 의사를 만났기에 딸은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지금은 치료를 받기 시작하고 정상 생활을 하고 있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추적 검사를 온 것이다. 병원에 오면 많은 불편을 겪고 있고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함께 하는 가족들도 본다. 의학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의 질병도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고통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도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줄여주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