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다시 찾아온 난기류

by 천진의 하루

딸은 한 달가량의 요양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먼저 다니던 직장에서는 새로 입사하는 것에 동의했고 순조로운 일상을 찾은 것 같았다. 계속된 스테로이드 치료로 체중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발병 전 다이어트로 날씬한 몸을 만들었던 것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내는 체중을 줄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며 배달 음식을 줄여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딸과 부딪혔고 큰소리가 오고 갔다. 나는 딸도 성인이니 스스로 할 것이라며 조금 기다려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아내를 다독였지만 좋지 못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부모는 자식보다 한 걸음 뒤에서 가야 하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물론 딸이 아직은 스스로 잘 해나가지 못하는 것을 알지만 부모가 다그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금 떨어져 바르게 가도록 조언해 주어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점점 늘어가는 딸의 몸무게와 약을 거르는 일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제때 약을 챙겨 먹으라고 말을 했지만 바빠서 자꾸 잊어 먹는다는 딸의 말을 듣고도 아무 이상 없는 것에 무심해져 갔다. 그렇게 이 년의 시간이 흘렀고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다시 MRI촬영을 했고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처방해 준 약을 잘 챙겨 먹고 관리를 잘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무탈하게 병과의 동거가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정밀 추적 검사를 받고 얼마 후 딸은 다리가 저리다는 연락을 해왔다. 체중이 늘었고 의자에 오래 앉아 일하는 아이라 혹 디스크가 온 것이 아닌가 해서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아내는 말했다고 했다. 이틀 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더 나아지지가 않았고 점점 저림이 심해진다는 말에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종합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바로 데리고 진료를 받았다.


진료 결과 시신경척수염이 재발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이번 재발은 척추 부위에 길게 염증이 발생했고 생각보다 염증 부위가 커서 바로 입원을 하고 스테로이드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딸은 지금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팀장으로 발령받은 지 세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입원치료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화를 내며 딸에게 말했다. '네 건강이 중요하지 회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이해를 해주지 않으면 퇴사를 하고서라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딸은 상사와 연락 후 병가를 얻었고 입원해 2주간의 집중치료로 혈장교환술을 받았다. 이틀에 한 번씩 수혈을 통해 자신의 피 속에 있는 나쁜 혈장을 바꾸어 치료를 하는 것으로 성공률이 최고 80% 정도가 된다고 인터넷에 쓰여 있었다. 치료기간 동안 저림 증상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딸은 2주간의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일상생활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부천 집으로 가 출근한 날 간헐적으로 저려오는 것 때문에 오래도록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딸에게 삼 개월 정도 집에서 함께 요양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회사에 얘기해 그렇게 해주면 다행이고 안되면 퇴사를 하고 집에서 회복 후에 생각하지고 했다.


다행히도 회사는 배려를 해주었고 딸은 집으로 돌아와 우리와 함께 생활하며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차 치료인 6주간의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고 기나긴 투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평생 함께 해야 할 동반자가 병이라는 것을 딸은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젊음이 이겨내 줄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관리를 잘해주고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견해에 위안을 삼는다.


약물치료가 계속되는데도 딸의 저림 증상은 개선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조급해졌고 지금 다니는 병원에 딸이 시신경척수염으로는 첫 번째 환자이고 의사가 경험이 부족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진료시 왜 호전이 되지 않는지를 물으면 잘 모르겠다며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을 할 뿐이었다. 불안이 불신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는 비슷한 환자가 많다는 일산의 암 센타에 다시 진료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첫 발병 때, 시신경척수염 환우회라는 사이트에 가입을 해두고 가끔 들어가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고는 했는데 전화를 하면 상담을 해준다고 되어 있는 글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고 치료 받은 내역을 물어보니 의사는 다른 곳보다 빠르게 치료를 시작한 것이고 조금 더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에게 상담 내용을 얘기했고 안심이 되지만 월요일 예약을 해두었으니 주말을 지켜보고 결정을 하자고 했다. 고생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주말 동안 딸의 저림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약효가 나타나는데 워낙 힘들어 하는 딸을 보면서 부모인 우리가 더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갔다.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기만 하면 된다.


딸에게 아내는 매일 전화를 해 상태를 챙긴다. 평생 친구를 얻었고 그 친구가 화내지 않도록 편안한 동행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딸은 다시 난기류를 만났지만 엄마라는 훌륭한 조력자로 인해 다시 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딸이 비행 중 다시 난기류를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도록 양쪽에서 단단히 잡아주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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