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전쟁

by 천진의 하루

매년 12월이면 치르는 전쟁이 있다.

다음 해의 달력을 배부하는 일이다.

달력 하나 나누어 주는 일이 무슨 전쟁이라 비유할 만한 것이냐 할 테지만 그 별스럽지 않은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전쟁보다 더 치열하다.


세상이 변하고 어려워지고 각박해지며 흔하게 나누어주던 달력이 귀한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연말이면 이곳저곳에서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기에 처치 곤란이었을 때도 있었다. 오죽하면 설날에 전을 부쳐서 올려놓기 좋은 종이로 쓰이는 것이 달력이었다.


그러던 달력이 비용을 절감한다는 정책으로 기업이나 은행, 가게 등에서 수량을 급격히 줄이거나 없애버렸다. 그래서 달력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더군다나 큰 글씨의 달력은 더 귀한 품목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많은 것을 하기 때문에 종이 달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연세가 많고 전자기기 사용이 어려운 사람들은 글씨가 큰 달력을 선호한다. 우리 회사는 큰 글씨의 달력을 만들어 매년 12월 첫날에 나누어 준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달력은 받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이 발생한다.

한정 수량을 제공해 주는 것이니 거래를 하시는 분들에게만 제공을 해야 한다. 야박하다고 소리치는 나이 드신 분들과 실랑이를 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거래가 없으신 분이라 드리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야박하다느니, 쩨쩨하다느니, 간혹 화를 내시는 분도 나온다. 참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거래를 하시는 손님도 다 드릴 수 없는 수량인데 모른 척 드릴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손님이 없으면 조용히 드리면 되는데 손님이 있을 때 오셔서 강짜를 부리시면 더 드리기가 어렵다. 이런 손님을 보면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래 살았고 이런저런 관계를 겪으며 살았을 텐데 삶의 간단한 이치를 왜 모르는 것일까?


강짜를 부리고 화를 낸다고 쉽게 얻어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단호하게 대하면 기분만 상하고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것이 부족했던 시절 자신의 것을 지키려면 강인해져야 했다.


이기기 위해 상대보다 더 큰소리로 대응을 해야 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어른들은 지금도 그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세월이 변했는데도 그때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손님을 만나면 머지않아 나도 화기 난다. 기분 좋게 줄 수 있는 것을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드리지 않는다. 회사 지침을 따르는 것이고 그분은 거래를 하지 않는 분이니 결국 씩씩거리며 발길을 돌린다.


그런 분들은 보내고 나서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이 번 연말에는 그런 손님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딸에게 다시 찾아온 난기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