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을 걷는 아이들

by 천진의 하루

나의 아이들은 예체능을 한다. 딸은 만화를 그리고 아들은 축구를 한다. 그런 아이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우리나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부모가 아이들 둘에게 예체능을 교육한다고 하면 모두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가르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지요."라는 말이다. 예체능을 배운다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예체능에 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딸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다. 매일 종이만 보면 무언가를 그렸다. 딸이 미술을 직업으로 삼게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일반 학교를 다니며 방과 후 활동과 예체능 반에 편성되며 막연한 생각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 되어서야 딸을 입시학원에 처음 데리고 갔었다. 학원에서는 어이없어하며 지금 시작해서는 원하는 대학의 학과로 입학할 수 없다고 했다고 아내가 말했다. 딸은 그 학원에서 첫 번째로 대학에 입학했다. 지금은 졸업을 하고 취직해 만화를 그리고 있다.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많이 했던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딸은 말한다. 자기 계발서의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딸에게 듣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축구를 한다. 발군의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에 팀에서는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용의 몸통이 아닌 뱀의 머리 역할을 했다. 성인이 되고 아들은 벽에 부딪혔던 것 같다.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축구를 그만두고 군대를 갔다.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아들을 응원했었다. 포기를 하는 것도 큰 용기라는 것을 안 후에 들은 아들의 선택이었기에 받아들이기 쉬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이 옳다고 믿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아이들은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아들은 군에서 제대하기 전 다시 축구를 해보고 싶다고 했고 그 선택도 응원한다고 해주었다. 또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언제나 아이들이 잘 살아내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안정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아들을 말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속으로 삼킨다. 카톡 대화창에 글을 적다가 지워버리기를 여러 번 했다.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스스로 깨닫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고 잔소리 밖에 안된다는 마음에서다.


나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내가 찾지 못했던 그 길을 찾을 수 있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하다. '부모는 자식의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걷는 존재이다.'라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뒤에서 든든히 지켜주는 존재라는 말인 것 같다. 최근 폭발적인 흥행을 한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이 아버지는 딸이 도전하는 순간마다 아빠가 항상 뒤에 있다며 '안 되면 빠꾸'라고 말한다. 부모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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