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풍기가 고장 난 날

by 천진의 하루

사무실의 온풍기가 고장 났다. 매일 아침 출근해 전원 버튼을 누르면 찌이잉 하는 기계음과 함께 송풍구의 문이 열리고, 윙 소리와 함께 바람이 나오던 녀석이다. 내가 오기 전부터 8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을,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내뿜어 주던 녀석이었다.


어제 오후, 따뜻한 바람을 내뿜던 녀석이 갑자기 웅 하는 소리를 내더니 멈춰 버렸다. 예전처럼 다시 힘을 내어 돌지 않고, 그저 조용해졌다. 직원과 나는 녀석의 가슴에 자리 잡은 동그란 전원 버튼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지만, 밝은 불빛만 들어올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전원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며, 수리 기사를 부르기로 했다.


오늘 아침, 다행히 기온이 평소보다 덜 춥지만 여전히 찬바람이 매서웠다. 밤사이 차가운 공기에 싸인 사무실은 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오전 10시에 오기로 했던 수리 기사는 11시는 되어야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책상 밑에 난로를 켜고, 입고 온 두터운 외투를 걸친 채 컴퓨터를 두드렸지만, 손끝이 시려웠다.


무릎 아래로는 따뜻한 열기가 올라왔지만, 벽을 타고 스며드는 냉기는 등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한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추위를 견디며 한 마디씩 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리 기사가 도착해 온풍기를 살펴보더니 실외기가 과열되어 타버렸다고 했다. 수리를 할지, 새로 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바로 새 제품을 살 수 없는 상황이라 수리하지 않으면 며칠간 추위를 견뎌야 할지도 몰랐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이 있다. 항상 곁에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르다가, 사라지고 나면 그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는 뜻이다. 온풍기가 고장 난 후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에야 그 빈자리를 느끼고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잃어버린 후에야 필요와 아쉬움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러니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쓰임에 감사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들, 곁에 있을 때는 쉽게 지나쳤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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