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누군가에게는 기쁨이란다.
우리는 기억의 포화 속에 세상을 살아간다.
아픈 기억과 좋은 기억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살아가기에
삶의 무게가 전부 다르다고 말한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어떨 때는 상처이고 기쁨이다.
누구나 기억의 편린 속에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도 많은 기억이 존재하고
그 기억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의 두려움은 그 기억 속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걸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나는 큰 개에게 두려움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예쁜 강아지를 집에 가져오셨다.
우리가 흔히 '똥개'라고 불렀던 믹스견이고 지금과는 다르게 마당에 묶어 키우고 우리가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끓여서 먹였다.
그 녀석은 집에 온 지 몇 개월 만에 어린 나 만큼의 크기로 자라났고 드디어 나와 경쟁을 할 만큼 강해졌다.
나는 남자라는 묘한 자긍심에 그 녀석을 괴롭히기도 하면서 웃기지만 서열 정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바늘 없는 주사기가 생겨서 물을 담아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물을 뿌리면 도망가는 그 녀석의 모습이 재밌고 신나서 그 녀석을 궁지로 몰아갔다.
그것이 큰 실수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궁지에 몰리던 그 녀석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낑낑거리던 음성이 성난 맹수처럼 '왕'으로 바뀌는 순간 아니 찰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녀석은 의기양양하게 나를 쳐다보며 승자의 포효로 으르렁 거렸다.
서열이 바뀌는 순간은 금방이었다.
그 후로 나는 녀석에게 아무 대항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었다.
이렇듯 잠깐의 방심과 무지는 자신을 약자로 만들어 버린다.
약자가 되는 순간 그것을 벗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고 상대를 깔보다가는 상대에게 선제권을 빼앗길 수 있다.
우리는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가 아닌 선방을 날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건가
평화주의자이고 싶은데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