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은 글을 쓰는 것도 잊고 잠들었다. 모처럼 모임에 나가 폭식을 했고, 더부룩한 속을 어찌할 수 없어 소화제를 찾아 먹었다. 회비만 내고 나가지 못하던 모임에서 소고기를 먹는다는 말에 무리를 한 것이다.
평소보다 많이 먹어 배가 불룩해졌고,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했다. 마루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머리를 하고 돌아오던 아내를 만나 함께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폭식과 산책이 겹쳐서인지 피곤했고, 열대야조차 느끼지 못한 채 푹 잠이 들었다.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 책을 읽고 필사를 했다. 이제는 제법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곳에서 자던 마루가 어느새 방으로 와 있었다. 아침 산책을 며칠 다녀왔다고, 시간 맞춰 찾아온 듯했다.
세수를 하고 간단히 준비를 마친 후 현관을 나섰다. 녀석은 언제 우울했냐는 듯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새벽 바람은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마루와 산책을 하다 보면 주변을 더 세심하게 보게 되는 것 같다. 녀석이 다니는 풀밭에 무엇이 있는지, 가는 방향마다 새로운 것이 생겼는지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요즘 아파트 화단을 따라 걷다 보면 갈 곳을 잃고 해볕에 말라 죽어 있는 지렁이들을 자주 본다. 더러는 밟힌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땅속에 있어야 할 녀석들이 왜 밖으로 나왔다가 그런 변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가족 여행 중 새벽 산책을 하다가, 길 위에서 방향을 잃은 지렁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제법 많은 지렁이들이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미끌미끌한 몸을 손가락으로 집어 풀밭에 옮겨 주었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 했다.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비 온 뒤 지렁이가 흙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숨을 쉬기 위해서라고. 살기 위해 나온 길이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갇혀 오히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옮겨 준 지렁이들은 행운을 만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다.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오히려 수렁에 빠지게 하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나락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러다 우연처럼 다가온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 길을 찾기도 한다.
지렁이들도 끝까지 살아 있으려는 몸짓을 했기에 내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한 지렁이는 자신보다 천 분의 일도 되지 않을 법한 개미 떼에게 잡혀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만 더 힘을 냈더라면 흙에 닿을 수 있었던 거리였는데, 힘이 빠진 그 순간, 먹잇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삶은 어쩌면 그런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따라 인생의 항로가 달라진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 선택을 믿으며, 오늘도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