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 마루와 나의 새벽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by
천진의 하루
Dec 28. 2025
얼마 전부터 우울한 모습을 보이던 강아지 마루 때문에, 아침 운동을 산책으로 바꾸었다. 매일 새벽 알람이 울리면 몸을 일으켜 끄고는 다시 잠을 청하곤 했는데, 오늘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어제 늦게 먹은 빙수 때문일까? 배가 살살 아팠다.
새벽부터 살짝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앉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했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진다. 해야 할 일들, 회사 일, 가족 걱정 같은 일상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딱히 결론이 나진 않는다.
잡스러운 생각들이 오가는 사이, 다행히도 뱃속의 불편함은 조금 가셨다. 마침 새벽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보다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기로 했다.
덮어두었던 책을 펼치고, 오랜만에 시험 공부용 교재도 들춰보았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운동 준비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산책 준비를 하며 마루를 찾았다. 어제는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어 한참을 헤맸지만, 오늘은 안방 스타일러 옆 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살그머니 다가가자 마루는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만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깰까 봐 조심히 문을 닫고 나왔다. 잠시 후, 마루도 방문에 만들어 둔 개구멍을 통해 얼굴을 내밀고 나의 움직임을 살폈다.
내가 현관 중문 앞에서 손짓을 해도 꿈쩍 않던 마루는, 문을 열고 나가자 그제야 살며시 따라 나섰다. 녀석, 도통 밀당을 한다. 현관에 도착한 마루는 앞다리를 길게 뻗고 몸을 낮춰 기지개를 켰다. 나갈 준비가 됐다는 신호다.
배변 봉투를 챙기고 하네스를 채운 후 현관문을 열자, 느릿느릿하던 마루는 갑자기 쏜살같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언제 우울했냐는 듯한 신이 난 모습이었다. 오늘도 나는 헬스장이 아닌 아파트 화단으로 마루와 함께 산책을 나서게 됐다.
해가 떠오르며 밝아진 아파트 단지엔, 나처럼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이웃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마루는 따로 가르친 적 없어도 순하고 사회성이 좋아, 다른 강아지를 만나도 짖거나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가가 상대의 냄새를 맡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산책 중 자주 마주치는 분이 계신데, 집에서 네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신다고 한다. 대형 푸들 한 마리와 마루처럼 소형 푸들 세 마리. 하루에 한 번에 모두 데리고 나올 수 없어 두 번에 나눠, 총 네 번의 산책을 한 시간씩 하신다고 했다.
나는 하루 한 번 산책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하루 네 번씩 강아지들과 걷는다는 얘기를 듣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도 마루를 사랑하지만, 그 정도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마루와 삼십 분가량 산책을 했고, 녀석의 기분은 한결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기를 바란다. 산책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강아지 배변을 수거하지 않고 그냥 두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이다.
나 역시 아주 가끔은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었지만, 가능하면 늘 잘 수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끔 화단에 방치된 다른 강아지의 배변을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오늘은 주머니에서 배변 비닐을 꺼내 남이 놓고 간 배변을 집어 들었다. 이전엔 하지 않던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씁쓸해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치우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내 강아지 것이 아니니까' 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내 마음이 문제였던 것 같다. 앞으로는 보이는 것은 그냥 치우자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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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19
[19일차] 조금 느슨한 하루의 기록
20
[20일차] 말하지 못한 슬픔
21
[21일차] 마루와 나의 새벽
22
[22일차] 살기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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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차] 나를 붙잡는 것들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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