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1년에 두세 권 정도, 그것도 대부분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고른 자기 계발서였다. 그 책들에는 늘 비슷한 말이 적혀 있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철저한 시간 관리, 그리고 새벽 기상. 머리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해보려 했지만, 사흘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꼭 나를 두고 만들어진 표현처럼 느껴졌다. 반복되는 시작과 실패는 자존감을 깎아먹었고, 나는 점점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책을 쓴 저자들은 나와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꾸준히 해낸다는 건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이번 도전은 이전과 달랐다.
1월 1일, 새해 다짐이라는 명분 아래 하루 종일 한 권의 책을 읽어냈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읽겠다고 정한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다음 날에도 가장 먼저 손에 든 것은 책이었다.
그 책은 몇 주 전 데일리 리포트 관련 영상을 보며 추천받아 사두었던 것이었는데, 두께부터 만만치 않았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책만 끝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독서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작심삼일이 되기 전에 일부러 어려운 목표를 던져본 셈이었다.
이틀에 걸쳐 책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 막연하지만 분명한 감정이 들었다. ‘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이어서 읽은 또 다른 책에서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면 된다”는 문장을 만났다. 그 순간,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이 시작되면 흐지부지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장치를 만들었다. 자기 전에는 읽을 책을 머리맡에 두었고, 출근길에 읽을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독서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처음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좋은 습관을 만들면, 그 기운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이어질 삶의 태도’라는 이유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원래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여기는 편이다. 승진 시험을 준비할 때도, 담배를 끊을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작은 유혹조차 이겨내지 못한다면, 더 큰 경쟁에서는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독서가 정말로 습관이 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열 권 정도를 읽은 뒤, 나는 장편소설에 도전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 21권이었다. 세 달에 걸쳐 전권을 읽어냈다.
지금 돌아보면, 이 독파가 나의 독서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수없이 시작하고 포기하던 독서 습관에 마침표를 찍어준 경험이었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안겨주었다. 이후 나는 하루에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더 지혜로워지거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일 스스로에게 “오늘도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하나를 만들어 준다. 욕망에서 시작한 독서는 이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질문은 남아 있다. 내 독서법이 옳은지, 내가 정말 성장하고 있는지, 더 현명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직 여정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전환점을 만날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책의 권수는 늘어났지만, 읽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서관에서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빌린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했다. ‘이렇게 읽는 게 맞나? 독서는 나와 맞지 않는 건 아닐까?’
그 혼란은 때로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독서 기록조차도 형식적인 작업이 되어, 블로그에 책 제목과 검색한 내용을 붙여 넣는 것으로 끝내곤 했다.
그렇게 오 년이 흘렀다. 비슷한 시기에 독서를 시작한 블로그 이웃들은 눈에 띄게 성장해 있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방식으로 기록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속도는 훨씬 느렸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답의 실마리는 노자와 장자를 읽으면서 찾아왔다. 나는 ‘읽기’ 자체에만 집착하며, 그 끝에 있을 것이라 믿은 장밋빛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생각하지 않은 채 전진하다 스스로를 소진시킨 셈이었다.
논어의 말이 그때 깊이 와닿았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나는 배웠지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얻는 것이 없었다.
그 후 목표를 ‘실천’에 두기 시작했다. 새벽 기상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고, 실천한 날짜를 기록해 공개했다. 처음에는 잘 이어졌지만, 잠드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점점 늦잠을 자는 날이 늘어났다. 다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늦게 일어나는 날도 그대로 기록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그 작은 기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었고, 새벽 기상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아직도 부족하고 불완전하지만,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스스로를 비난하던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나만의 속도로 첫 번째 벽을 넘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처럼 천천히, 여러 번 흔들리며 변해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빠르게 앞서갈 것이고, 당신은 뒤처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신이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주거나,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받은 몫이 다를 뿐,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마다 속도가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목표에 도달한다. 승리를 증명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끝까지 도착하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속도를 알고,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도 조금씩 사유하며 성장해 왔다. 독서만큼 사고의 폭이 넓어졌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힘과 시간을 견디는 포용력도 함께 자랐다.
시간은 복리처럼 쌓인다. 무엇이든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쌓아간다면, 언젠가 무의식 속에 저장된 시간들이 폭발적인 성장의 촉진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다림은 결국 더 단단한 결실을 가져다준다.
이제 나는 천 권의 책을 향해 가고 있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독서는 내 삶을 충분히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