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시간, 내가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

논어에서 배우는 하루의 시작.

by 천진의 하루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울리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기 싫은 유혹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세운다. 새벽은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언제나 잠이 많아 출근 시간이 임박해야 일어났고 부산스러운 아침을 맞으며 허겁지겁 나가기 바빴다. 게으름은 일상이었고 여유를 갖는 것은 꿈이었다.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 이인 8절 -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쩌면 도를 깨우치기 좋은 시간은 아침이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 새벽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구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강조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려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저녁형 인간이라고 정의 내려 버리곤 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습관을 만들어 보겠다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함께 한 것이 논어 한 구절의 필사였다. 논어는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자 사후에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억하여 엮은 책이다. 논어의 구성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논어 책의 저자는 '잘 닦여진 포장도로에 익숙한 사람은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만났을 때 짜증을 내게 된다. 그러나 조금 그 길을 가다 보면 가늘고 굽어진 길의 오밀조밀함에 정감을 느끼고, 그다음에는 그 산길을 가고 있는 자신의 왜소함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라고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고민도 하지 않았고 잊고 있었다. 논어를 여러 번 읽으며 쉬우면서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말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 같다. 논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 문장 한 글자까지 깊게 음미하고 충분히 생각해야 뜻과 의미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논어에 많은 밑줄을 그었고 가슴 깊이 새기려 노력했지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군자의 길은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욕심으로 가득하고 사익이 필요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아직도 나는 군자의 삶을 동경하기는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새벽은 나에게 몇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부여했다.



논어는 삶을 관통하는 지혜가 가득한 책이다. 살면서 마주칠 수 있는 고민들을 과거에도 했고 미래에도 하게 될 것이지만 이천오백 년을 내려온 공자의 말은 지금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적인 정의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익숙하고 당연한 가르침인데 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 실행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느끼는 것이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면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위정 11절 -


이 말이 요즘 고전을 읽고 지금의 것들을 연계해야 한다는 기조와 어울리는 듯하다. 나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구하고자 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논어와 관련된 책은 셀 수 없을 정도이고 다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십여 권을 읽어도 알 수 없었던 말이 더 많았다. 나는 공자가 여러 번 강조했던 말을 중심으로 삶에 적용하려 했다.



내가 선정한 세 마디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불환인지불인기 환불지인야(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이다. 이 세 마디는 공자가 여러 번 강조했던 말이며 명심하고 지켜야 할 지침 같았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삶에 적용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가슴에 새긴다고 해서 반드시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는 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위정 15절 -


천여 권에 가까운 독서를 했고 논어와 관련된 책도 스무 권 이상을 읽었지만 삶이 변하거나 더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난 공자의 말이었다. 무작정 책을 읽는 일에 몰두했고 그것만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변화는 더뎠고 근심과 의심이 커져갔다. '나는 맞게 가고 있는 것인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의심으로 바뀌기 전 만난 이 말은 잠시 쉬어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 무작정 읽어대던 일을 잠시 멈추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생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배우기만 하려 했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니 비슷한 책을 읽어도 연계되지 않고 잊히기를 반복하며 쌓여 나가지 못하는 막연함에 빠졌던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필사를 하며 여유를 갖고 하루를 열자 갇혀 있던 생각들이 자신을 덮고 있던 허물을 벗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흩어져 있던 구절들이 서로 부딪히며 삶의 궁금증을 불러오는 것 같았다.



불왈여지하여지하자 오미여지하야이(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未如之何也已矣)
'어찌하면 좋을까, 어찌하면 좋을까'하며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도 정말 어찌할 수가 없다.
- 위령공 15절 -


배움은 궁금증을 갖는대서 출발해야 한다. 학창 시절 궁금증이 아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었다. 그러니 제일 하기 싫은 것이 공부였다. 그 싫었던 공부를 지금은 즐겁게 하고 있다. 변한 것이라고는 '해야 한다'에서 '하고 싶다'로 바뀐 마음뿐이다. 궁금한 것이 생겨 그것을 찾고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니 싫은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 같은 것을 공부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지 이해가 되었다. 공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우는 제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배움에 관하여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이외에도 논어에는 '배울 때는 능력이 미치지 못할까 안타까워해야 하며, 나아가 이미 배운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해야 한다.', '산을 쌓다가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그만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그만둔 것이다. 땅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한 삼태기의 흙을 갖다 부었어도 일이 진전되었다면 그것은 내가 진보한 것이다.'라는 말로 꾸준함과 선택에 관해 가르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는 한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가진 것을 잃을까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더더욱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이다. 고지가 가까웠는데 포기하는 것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불실자, 유의부!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有矣夫!)
싹은 솟았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꽃은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자한21절-

나는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싶었다. 많은 책을 읽어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길이 있는지도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도 고민했었다. 책을 읽는다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이 구절을 만났다. 논어를 읽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던 구절..


포기하지 말라고 강권하는 자기 계발서들을 보면서 정말 포기하지 않으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포기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을까? 시간은 거짓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덧붙여 내가 하는 노력은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고 절실하지 못한 것이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다다라 자존감마저 추락하고 있었다.


공자의 이 글은 포기가 아닌 위안을 가져다준 글이었다. 나의 가멸찬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았다. 욕심 가득한 목표를 버려도 될 것 같은 말이었다. 누구나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과정을 이해받는 것 같았다. 이후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지 않아도 된다는 잔잔한 위로를 얻게 되기도 했다.


나는 항상 무언가가 되고 싶은 욕심을 벗어나지 못했다. 부자가 되고 싶고,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고 나를 닦달하며 통찰을 얻지 못한다며 끙끙거렸다. 많은 욕심과 허황된 희망을 품고 남들이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법칙을 따라 하려 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처럼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달리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깨닫게 만들어 준 것이 논어였던 것 같다. 오십 후반의 시간에서 성공은 무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 더 열심히 잘 살아간다는 것, 쫓기듯 사는 삶보다 과정을 음미하며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자 시대의 오십 후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 많았던 시대다. 당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욕심내지 않으며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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