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불안은 어둠이 아니라 질문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새벽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어떤 해답을 주는 것인지 불안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의 새벽이 오롯이 나만의 새벽인지는 알 수 없었다. 흔들렸고 의심했으며 불안했다.
정말 잘하는 것인지 그대로 따라 한다면 통찰의 기회, 성공의 길을 열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를 지배하는 무의식은 많은 유혹으로 나를 흔들었고 여지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지켜봐야 했다. 어둠을 뚫고 나가야 하지만 다시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실패와 헛된 다짐이 공허하게 맴돌고 성장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부족함에 치를 떠는 일이 계속되었다. 생각하는 방법들이 모두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고 그 이유는 나의 부족함 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으로 흐르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책 읽기는 잘못된 것이고 희망찬 미래도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물들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들은 독서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독서 모임에 참석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마주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한 독서 모임이 있다. 친하게 진해던 세 사람이 책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권장도서를 추천하다 나온 것이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서에서'였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새벽에 일어나고 일어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며 자신의 부족함과 의지가 부족함을 원망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변하려는 마음이 진정한 것인지 덧없는 욕심만 부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에 스스로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이 절망과 좌절의 반복은 삶의 열정을 식게 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기력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알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루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읽은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글을 만났을 때 알게 된 것 같다.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될 때가 있고 당신은 그 상황에 따른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의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긴 어둠을 헤치고 일어나 맞는 새벽에도 당신의 상황은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질문 속 삶의 방향과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없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흔들리며 여기까지 온 나를 칭찬해 줄 만했다. 아직 숱한 질문에 흔들리고 맘을 다잡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증은 커져만 같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는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책은 내 삶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 같다. 쏟아지는 질문들이 답을 찾지 못하고 맴돌기만 할 때, 이 책은 나에게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망설이지 말고 당신의 삶에서 지금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잘못했던 행동이라 생각한다면 변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이라 얘기한다. 짙은 암흑 속을 걷는 것 같은 길에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다.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의 질문에도 어느 정도 답을 찾게 된 것도 같았다.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행복하고 싶다는 질문의 답을 찾은 것 같다. 저자는 행복이 얻으려고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하고 싶다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지금 행복하지 않아서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대단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버릇이 있어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큰 행복은 당신 보다 커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커다란 벽에 마주 서서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고 좌절하는 것이다. 큰 행복을 넘어서 얻으려면 작은 행복을 발 밑에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쌓은 행복이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당신의 키 보다 큰 행복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새벽의 불안은 질문을 품고 삶의 길을 열어 준 것 같다. 흔들렸던 삶이 어떻게 단단해질 수 있는지 책은 말해주고 있었고 지친 하루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 나를 휘감아 돌던 많은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나를 바꾸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세 가지 길
첫째.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
둘째.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
셋째.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