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

장자를 만나다.

by 천진의 하루

젊은 시절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술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귀가를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시장 근처에 있는 곳이었는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만취해 몸을 흐느적거리며 집 현관에 다다라 너무도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취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자신이 너무도 창피했다. 다음 날에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느꼈고 흥청망청하는 내 삶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후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새벽은 그런 의미의 시간이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시간 말이다. 그런 시간의 대부분을 잠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고 삶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었기에 새벽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잠을 이기지 못해 멍한 눈으로 무거운 몸을 끌고 가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새벽의 아침을 오롯이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고는 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읽는 자기 계발서들은 한결 같이 새벽에 일어나 자신의 의지에 따른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1순위로 뽑았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책들이 나를 자극했었다.


일어나기도 힘든 새벽 4시 30분, 알람을 맞춰두고 잠이 들었지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여지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간혹 일어나는 날이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않았기에 우왕좌왕하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저자들은 한결같이 일어나 반듯이 해야 할 것을 만들라고 조언하지만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정하지 못했다. 정한 것도 오래가지 않아 낮에 하면 된다로 바뀌었다.


새벽을 제대로 맞지 못하는 일들은 오히려 불안을 키워 나갔고 자존감의 하락을 불러왔다. 나는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 같았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었고 안다고 해도 반드시 새벽에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정해 놓은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압박은 삶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때 내게 들어온 것이 장자의 '유유자적'인 삶의 가르침이었다. 애쓰지 않아도 되며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 삶의 방향을 정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 같았다. 공자의 성공에 대한 갈망보다는 때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장자의 삶이 어쩌면 지금의 나와 일치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훌륭한 성인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고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반드시 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기가 많습니다.
무기가 많으니 무기를 써먹으려고 무언가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망합니다.
장자 <열어구>

반드시 해야 한다는 굴레는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과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은 오히려 앞으로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고는 했다. 조금만 늦잠을 자도, 하고자 했던 것을 하지 못해도 자신의 부족함을 더 크게 책망하는 굴레에 빠지는 것이었다. 자존감은 하락하고 포기의 달콤함에 젖어들 것 같았다.



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이것저것 휘둘다가 헛 힘만 빼고 정작 필요할 때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런 맥 빠짐이 나에게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성장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잘하고 싶다 등의 마음의 압박은 스스로를 지치게 했던 것 같다.



장자는 성인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고집을 버렸기에 무기가 없다고 한다. 절대 반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던 반지의 제왕 속 캐릭터처럼 나도 그런 강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쉽게 이길 수 있는 게임 속 치트키가 말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차근차근 성장해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 게임인데 쉽지가 않다. 그 게임을 쉽게 이기는 몇 가지 치트키의 사용에 유혹을 느끼는에는 충분하다.



결국 게임에는 승리할 수 있지만 성장은 하지 못한다. 치트키가 소용없는 실전에서는 경험 없는 초심자처럼 행동하며 패배하게 된다. 장자의 말처럼 다양한 무기만을 찾다가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고 망하는 것과 같다. 삶에서 다양한 무기를 갖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적재적소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기가 아닌 것이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중간에 머문다고 한다면
근사한 대답이 될지 모르지만 가짜다.
사이비는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길과 모습을 따라 노닌다면 괜찮을 것이다.
칭찬이나 비난에 무심한 채 용이 되기도 하고,
뱀이 되기도 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대로
무언가 되겠다고 떼쓰지 않고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세상 만물과 더불어 살아가되 세상 만물과
다투지 않아 그것에 부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 <산목 1>


아버지는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중용의 가르침인 것은 한 참 후에야 알았다. 본능적으로 아버지는 내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경계를 잘 살아가기를 바라신 것 같다. 두 경계의 외줄은 언제든 조심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릴 수 있었다. 깊은 강물 사이를 잇는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넘어가듯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모나지 않으려 조심했다. 앞으로 나서지 않고 불이익에도 눈 감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 삶이 옳았는지는 모르지만 다치지 않고는 살아왔다. 요즘은 그게 다였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는 한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일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정말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얻은 것은 없고 손해만 보는 일도 많았다.


후배들에게는 뒤처지고 쓰임이 없어진 듯한 기분은 열정마저 바닥 깊은 곳까지 침잠하게 만들었다. 정말 올바르게 살아온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올바른 가치라 믿고 중심을 잡고 살았는데 얻는 것보다 앓은 게 더 많은 것 같은 삶이었다. 그나마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한 삶이었던 것이다. 장자는 그거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서만 길을 찾으려는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그 어느 것도 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지극한 도도, 위대한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가 언제나, 어디에나, 무엇에나 있다는 말은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습니다.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장자 <지북유>


논어에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공자는 '많이 배워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세상의 이치를 꿰뚫었느니라.'라고 말한다. 나는 통찰과 길을 찾기 위한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혹시 놓치고 지나는 곳은 없는지 그곳이 정말 맞는 곳인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여러 곳을 주섬주섬 돌다 보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배움과 망각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곤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책을 읽는 것에 의문이 들고 새벽 차가운 공기가 환상에서 깨어나라 떠미는 것 같았다. 통찰을 얻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 아무나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나는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는 상념에 빠졌다.


흔들리는 것을 잡아 준 장자의 한 마디는 고집 피우지 말고 모두가 하나같이 가리키는 곳을 향하라는 말이었다. 모든 것은 저마다의 의미와 쓰임이 있으며 쓸모없음 또한 그것의 쓸모라는 것이었다. 나의 쓸모가 어쩌면 틀 안에 나를 가두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못가에 사는 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한 번 쪼아 먹을 모이를 만나고,
백 걸음을 걸어야 한 번 마실 물을 만납니다.
그럼에도 새장 속에 갇혀 길러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왕같이 대접받을지라도,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자 <양생주>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하여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대하여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여름이라는 시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견문이 좁은 선비에게 도에 대하여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배운 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대는 강가를 벗어나 큰 바다를 보고서야
당신의 보잘것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대에게 '큰 이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자 <추수>

장자는 틀에 갇히는 것을 조심하라고 한다. 아무리 편안하고 쉬운 길이라 하지만 틀 안에선 얻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고 생각의 범위를 넓힐 수 없게 된다. 중국에는 '전족'이라는 풍습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 있다.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헝겊으로 발을 조여 맨다고 한다. 그러면 발이 더 자라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작은 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넘을 수 없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큰 생각을 만나도 무시해 버리고 할 수 없다고 좌절해 버리는 것이다. 장자는 고되고 힘든 길을 걸을지라도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를 부술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실력은 가파르게 상승하지 않고 계단처럼 차근차근 올라간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계단 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그 또한 누군가 만들어둔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도는 모든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장자의 말처럼 스스로가 가둬 놓은 틀을 밀고 나오려 해야 한다.


새벽은 그래서 가장 정직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나 이외에 누구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 스스로에게 묻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을 깨트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요함이 가져다주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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