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by 천진의 하루

'인간도 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말은 고통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같이합니다. 고통이라는 말의 또 다른 낱말입니다.'


부처는 삶이 '고'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삶을 시작합니다. 세상에 나오기 위해 엄마의 품 속에서 열달을 편히 살다 떨어지는 이별의 '고'를 제일 처음으로 겪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고통과 함께 시작했지만 잘 겪어내면서 성장하는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빛의 고통이 없으면 제 색깔을 낼 수 없듯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고통이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결코 주지 않습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만한 고통만 줍니다. 신은 인간이 고통스러워할 때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늦추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너무 성급해서 신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지 못할 뿐입니다. p45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고통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공이라는 글자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수없이 작은 실패가 개미처럼 많이 기어다닙니다. p47

'신은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의 문을 열어준다.'라는 글을 많이 읽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만 막상 벽에 부딪히면 당황스러운 마음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낙심하기에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실패로 자신의 인생이 끝이 난 것이라 확신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멈추어 서서 생각해보면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실패를 마주했을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갓을 곱씹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책을 읽으며 깊게 느끼고 잊지않는 대목 중 하나가 '애벌레의 끝은 나비의 시작이다.'라는 글입니다.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감당할 수 있는 고통과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앞에두고 있는 사람들인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해서 현재 내 인생의 꽃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과거가 좋았다고 해서 오늘의 좋은 일이 과거만 못한 것이 아닙니다. p60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오늘이라고 해서 나의 것이 아닙니다. 어제 죽은 이들의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또 나누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입니다. p64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인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나의 가장 못생긴 부분이 끝까지 남아서 나를 지키는 대들보가 될 수 있습니다. p76

이 글을 읽으며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삶을 사는데 익숙합니다. 저 또한 삼십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삶보다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늦게까지 일하고 열심히 일하면 상사들이 알아줄 것이고 직장도 저의 노고를 칭찬할 것이라 생각해서 가족의 일은 언제나 직장보다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직장과 상사는 자신들에게 필요를 제공하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저는 남을 위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황까지 왔던군요. 저 또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부하직원들에게 나와 같은 삶을 요구할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타인을 위한 인생을 살았다고 후회하면서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이란 그런 곳인가 봅니다. 필요성이 있는 살람이 살아 남는 곳이니까요.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준비해야만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는 최선을 다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우엔 공연히 결과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p82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 것 같습니다. 논어에는 “苗而不秀者, 有矣夫! 秀而不實者, 有矣夫! (자왈 묘이불수자 유의부 수이불실자 유의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싹은 솟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을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모두 꽃과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땅 속에 묻혀 있는 씨앗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천천히 썩어갈 뿐입니다.

어느 날 산책길에 탈피하지 못한 매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어 마지막 안간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매미의 껍질을 벗겨내 줄 수는 있지만 참았습니다. 탈각을 하는 매미나 나비는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지 못하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윗 글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오늘이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졌고 그 사람이 간절하게 소망하던 내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충분히 준비가 되면 시험장에 앉아서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듯 자신의 삶을 충분히 준비하는 삶으로 만든다면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용서받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임종 무렵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왜 그때 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았던가'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죽음에 이르도록 남을 용서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에 대한 용서야말로 모든 용서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p137

용서라는 말에 관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저자는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화를 내고 그 사람에대한 욕설을 퍼부어대는 해동을 하면서 자신을 곱씹어 후회합니다.

그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 행동과 생각이 자신을 피폐하게 만든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사람의 얘기만 나오면 거친 말을 쏟아내며 제 입을 더럽히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날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 일에 내 잘못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화를 내고 더럽고 거친 말을 쏟아내며 내 삶을 망가트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얘기가 나오면 평범한 언어로 대수롭지 않고 짧게 흘려보냅니다. 내 삶이 긍정이 되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도 긍정이 되어야 합니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지금 이 순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만 하는 데에도 남은 인생의 시간이 부족할까 봐 두렵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인생이라는 저의 피아노가 소음밖에 낼 수 없다면, 그것은 피아노한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연주자인 저한테 잘못이 있습니다. p159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의 미래는 나의 미래가 결정짓는 게 아니라 나의 오늘이 결정짓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 밑줄을 그엇던 것 같습니다. 매번 책을 읽으며 많은 감동을 받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기를 반복합니다. 이 두 대목을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밑줄 친 많은 글들이 존재하지만 모두를 기록하기는 버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나이를 먹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글을 보면서 가슴이 탁 막히는 기분입니다. 그게 저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오십 중반을 넘어 가는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를 못했습니다.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확신하지를 못합니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금전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은퇴 이후에도 적정한 수입이 있어야 여유로운 생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글 쓰는 일이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나의 인생이니 하고 싶은대로 돈이되던 안되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장이라는 타이틀은 가족의 삶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쓰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일이고 기대를 품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잔잔한 얘기를 표현하고 싶은 것 뿐이니 욕심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쓰다보면 혹시 아나요 누군가 찾아와 글을 읽어주고 고맙게도 좋아요 버튼을 눌러 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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