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은 새로운 시작에 두려움을 갖게되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바쁘고 정신없이 청춘을 살았고 첫 번째 직장에서 이제는 떠나야 할 입장이 되기도 한다. 생각과 몸은 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회사에서는 퇴물 취급을 받거나 현장에서는 답답한 사람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앞으로도 몇 년은 쌩쌩하다고 큰소리를 쳐보지만 오랜시간 달려온 몸과 정신은 조금씩 무너져 있기도하고 지금 무너지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조심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불안한 삶을 마주하고 삶을 향해 나가기 위한 길을 찾으며 오십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깨알같이 주옥의 말들이 포진했던 책이었다. 오십 후반의 삶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앞으로의 삶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하고 전진해 나갈 것인지 길을 빛춰주는 것 같았다. 밑줄 그었던 글에 한 마디씩 코멘트를 다고 싶으나 글을 음미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깨닫게 해줄 것 같아 멈추었다.
어쩌면 100세 시대에 오십은 가장 좋은 때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에서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기 위한 좋은 기회가 바로 오십이 아닐까? 좋은 기회인 줄 모르고 때가 오지 않는다고, 너무 늦었다고 불평만 하고 있기에는 오십은 아직 너무 젊고 더 성장할 수 있는 나이다. 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 지금도 늦지 않았다.“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모르는 것을 시작할 때는 이 문장이 절실히 다가온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안 되면 어떻게 하면 될지 알아보면 된다. 시작도 하지 않으면 물을 게 없는 건 당연하다.
하고 싶은 일, 계획만 하던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사람들이 인생을 알차게 살지 못하는 것은 준비에만 바쁘고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항상 ‘내일’을 시작일로 잡는다. 지금까지는 나의 문제가 아닌, 주변의 상황과 조건과 가족을 위해 나의 시작을 미뤘다면 이제는 나를 위한 도전을 해야 할 때다. 일단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그것에 전념해 보자.
성공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내가 아닌 남이 인정해 줘야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항상 더 높은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공의 끝이 어디인지를 묻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러나 성장은 다르다. 성장은 남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 성장을 기록하고 느끼면 성장인 것이다. 특히 오십의 성장은 달라야 한다. 남을 의식하는 성공이 아닌 스스로 성장을 꿈꿔야 더 행복한 중년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나를 위한 시간을 내야 한다. 오로지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생의 중턱에 와 있는 지금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앞으로의 삶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앞으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지,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는 것도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애써 붙잡지 않는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실행할 뿐이다.
돈은 자신의 그릇만큼 채워지는 법이거늘 자신의 그릇은 키우지 않고 욕심만 키웠나 보다. 자신을 알고 돈을 알면 욕심을 버리게 된다. 욕심을 부릴 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먼저다.
오늘의 작은 행동이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런 행동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반복했던 행동이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믿는 대로 행동한다. 자신의 작은 행동 변화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변화라고 느끼고, 무엇이든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삶은 주어진 대로 편안하게만 살아가려고 하면 변화하지 않는다. 인생의 변화를 꿈꾼다면 의도적인 노력이 꼭 필요하다.
경험에는 공짜가 없으니, 지금도 나는 경험을 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선택과 결정으로 살아간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가 느끼는 성공과 행복이 다를 뿐이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가능성을 낮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는 순간이다.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면 그게 뭐든 될 수 있다. 아주 작은 행동에 자신감이 생기면 두려움이 줄어들고 작은 용기가 생겨난다. 그러면 나는 되고 싶은 사람,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계획은 작게, 실행은 바로’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 시작이다.
나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은 주도적으로 내가 내 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아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분명 더 좋은 시기는 있어도 늦은 시기는 없다.
1일 1포스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은 늘 힘들기도 하지만 성장에는 꼭 필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글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글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공감을 불러오고 위안을 주기도 한다. 1일 1포스팅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워밍업이었다. 매일 글을 쓰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100일의 글을 달성한다는 것은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마중물이 된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든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며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도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매일 글을 쓰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아진다. 생각 없이 하던 말도 글을 쓰면서 반성하게 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던 행동도 글을 쓰면서 다시 보게 된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오십의 나이에는 의도적으로라도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 읽기와 글쓰기다. 오십은 나만 모르는 내가 아닌, 나를 알아가는 나로 채워가기 좋은 나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지금 다시 뒤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인생은 나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교하며 살든 비교를 당하며 살든 내 인생을 사는 것이지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꿈은 꾸어야 이룰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진다. 자신만의 속도로 그냥 하면 된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에서는 진짜 ‘그 사람’이 될 때까지 그 사람인 척하라고 말한다. 내가 되고 싶어 했던 ‘그 사람’이 이미 된 것처럼 행동하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 사람’으로 봐줄 때까지 ‘그 사람’인 척하라고 말이다. 현재의 직업이 아니라 원하는 직업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원하는 일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비행기, 보석, 장식품, 비싼 옷, 많은 돈, 비싼 차 다 있지만 지금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드리고 싶은 말은 사람이 살아갈 때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길 기원하고 타인을 돕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생은 너무나 짧다. 이 한 생애에 정말 필요한 것은 비싼 물건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
물건도, 남편도, 인생도 처음부터 마냥 좋은 것은 흔치 않다. 그냥 잘 사는 것이다. 살다 보니 그것이 내 것이 되고, 나한테 맞춰지고, 내 인생이 되는 것이지 특별히 더 노력한다고 더 빨리 나에게 맞춰지는 게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흐르고 적당한 세월이 지나니 소중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법륜스님 말씀 중에 들을 때마다 지혜를 얻지만, 특히 와닿는 말씀이 있다. 바로 ‘인정하기’다. 모든 것은 인정하면 편해진다는 것. 남의 생각을 부정하며 나와 다르다고 내 생각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고 인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것이다.
인정한다는 것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다. 인정하는 삶은 행복하다. 행복은 결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