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 Jun 21. 2020

외할머니의 마지막 집밥

부침개와 소시지







집에는 풀이 많았다.

크고 근사한 정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 뒤편에는 조팝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을 가득히 품은 화분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풀들의 잎사귀가 저마다의 녹색으로 물이 들고 짙고 선명한 분홍빛의 복숭아꽃이 가지마다 빼곡히 피어나 사방에 흐드러지던 어느 여름날 나는, 우리는 외할머니와 이별을 했다.


이제껏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그날도 외할머니는 아르바이트를 가는 나에게 아침상을 차려주셨다. 머리를 말리고 몇 안 되는 화장품을 얼굴에 찍어 바르고 있자니 방문 넘어 주방에서 외할머니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곧 가스레인지에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이 올라가고 가스불이 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아악-”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부침개 반죽이 한가득 끼얹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릇노릇하게 굽힌 외할머니표 부추 부침개가 식탁 위에 놓였다.


외할머니는 옛날부터 부침개를 자주 부쳐 주셨다. 싱싱한 부추가 한가득 생기는 날이면 어김없이 외할머니는 밀가루 반죽물을 만드셨다. 외할머니에게 거창한 재료는 필요치 않았다. 냉장고 속에 있는 당근이나 양파만 한가득 같이 썰어 넣어도 외할머니의 부침개는 언제나 맛이 좋았다. 그러다 냉동실에 얼린 오징어나 홍합이 있는 날에는 마치 횡재라도 한 것 마냥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오징어와 홍합이 가득히 들은 부추 부침개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호화스러운 맛까지 더해졌으니까.  


“다녀오겠습니다~.”

그날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했고 포근했으며 평화로웠다.

현관문을 열고서 나는 외할머니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식탁을 닦던 외할머니는 잠시 그 손을 멈추고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곤 이내 환한 미소로 내게 답해 주셨다. 그래, 오늘도 잘 다녀오라고.

닫히는 현관문 틈새로 다시 식탁을 닦으며 내가 남긴 소시지 하나를 집어 드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주 조그만 뿌듯함이 나의 마음속에 채워졌다.

‘역시 소시지를 다 먹지 않기 잘했어.’

그렇게 내가 외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드린 것은 분홍 소시지 3개였다.


‘죄송해요, 외할머니.’

자식과 손주들의 밥을 챙겨 주실 때면 언제나 가스레인지의 불 앞에서 부침개를 부치시던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의 허리가 조금씩 굽어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외할머니도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찍은 사진 속의 외할머니는 변함없이 부침개를 부치고 계셨지만 곧기만 했던 외할머니의 허리는 전과 달리 조금 굽어 있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아차린 나는 아직도 그 사진을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서 서랍장 깊숙이 간직하고만 있다.

이 모자란 손녀딸을 용서해주시기를, 그리고 부디 지금 계신 그곳에서는 허리가 굽도록 누군가의 밥을 차리느라 애쓰는 일이 없으시기를.


늘 부쳐주시던 부추 부침개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구워 고소한 참기름을 바르고 짭조름한 소금을 뿌린 김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먹어온 외할머니의 밥맛이 어땠었는지 이제는 기억에서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다. 점점 밥이 질어지고 간이 세어지는 외할머니의 음식들에 속으로 작은 불평을 털어놓던 나의 못난 모습들이 떠올라 마음이 쓰리다. 조금만 더 일찍 철이 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진수성찬으로 한상 가득히 차려드릴 솜씨는 여전히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두부와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은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외할머니 좋아하시던 소시지도 한가득 굽고서 외쳐보고 싶다.

“외할머니 식사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환하게 웃는 날도,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날에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