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는 꿈이 아닌, 이루는 꿈!
난 여행을 좋아한다.
20대 때는 번돈을 싹 다 여행에 쏟아부었고, 일도 출장이 많은 일을 하게됬고, 결국 이런 평범하지 않은 꿈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앤간한 좋다는데는 다 가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도 꽤 다녔는데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 2주 동안 베트남을 차로 종단한 적도 있다.) 2주 전에 '하바수 (Havasu)' 를 다녀오면서 내 인생의 최고의 여행지가 이걸로 바뀌게 됬다. (정식명칭 Havasupai)
'하바수' 는 미국 그랜드 캐년 안쪽에 위치한 여행지인데, 미국에도 크게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서, 검색해 봐도 몇개 안 나온다.) 유명하지도 않은데 내 평생 최고의 여행지라고? 너무 개인적인 취향 아닌가? 일단 사진부터 보자. (모든 사진들은 이번에 직접 찍은 사진들. 사진을 터치하면 원본 고화질로 볼 수 있다.)
'하바수' 가 그닥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지' 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가기 위해서 'Permit (허가)' 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부터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 해 1년치 예약을 2월달에 받기 시작하는데, (겨울은 폐쇄) 예약은 시작하자 마자 며칠만에 완판이다. 며칠이 걸리는 이유는 널널해서가 아니고, 인터넷 예약 시스템이 없고 오직 전화로만 예약을 받기 때문이다. 1년치 예약이 전화로 며칠만에 완판된다는 말은 인터넷 예약으로 한다면 1분 만에 완판된다는 뜻이 되겠다. ‘운’ 과 ‘노력’ 없이는 예약을 하기 힘들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여행이나 캠핑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하는 꿈의 캠핑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
참고로, 이번에 우리팀에서 4-5명이 예약을 시도했는데, 단 한명만 성공을 했으며 (일단 한명이 성공하면 16명까지 같이 갈 수 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3일 내내 전화를 7천번 했다고 한다. 약간의 양념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만큼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라는 뜻이겠다.
퍼밋을 받더라도 여긴 기본 체력이 되지 않으면 못가는 곳이다. 차가 못들어가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약 20km 백패킹을 해야지만 캠핑장에 들어갈 수 있고, 캠핑장에는 물과 화장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다 싸짊어지고 가야한다. 텐트/침낭 등 침구류, 버너/코펠 등 취사도구, 쌀/고기/야채/밑반찬/라면 등 몇일동안 먹을 음식물 등.. 남녀불문 최소 20~30kg 짜리 배낭을 메고 가야하고, 캠핑장에서 4개의 폭포를 보기 위해서 추가로 거의 10km 를 걸어서 돌아다녀야 한다. (아래 사진 절벽 밑에 물길처럼 보이는 것이 트랙킹 코스)
이 중에는 90도 절벽을 줄만 잡고 약 50미터 가까이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 매우 위험한 코스도 포함이 되어 있다. 따라서 노약자는 아예 올 수가 없고, 일반인도 고소 공포증이 심하거나 매달리기 1초도 못하는 연약한 팔뚝을 가진 사람들은 엄청 고생한다. 하지만 바꿔말하면,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는 천혜의 관광지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아래 사진 처럼 몸 하나 겨우 통과하는 동굴을 수직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기본체력과 의지만 있다면 여자들이나 아이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일행 16명 중에서 여자가 5명이었고, 2명은 중딩 아이들이었다.
왜 이렇게 어렵고 험난한 코스를 가기 위해서 이 고생을 불사하는 걸까? 그건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천혜의 경치 때문이다. 그랜드캐년과 같은 웅장한 붉은색 계곡 안쪽에 울창한 초록색 숲이 있고, (거의 정글 수준) 그 사이로 에머랄드 빛 폭포가 숨어 있다.
사실 2년 전에 친구들이 여길 가자고 했을때 난 단칼에 안간다고 했다. 30kg 백을 메고 20km 를 걸어야 한다고? 난 군대때도 완전군장 한번 안 맸던 사람이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해도 텐트 한 번 사본적 없고, 제대로 된 배낭 한 번도 사본적 없다. 아니 세상에 좋은데가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런 고생스런 곳을 가야하나?
하지만, 친구들이 나빼고 다녀온 뒤 보여준 사진을 보고 그냥 그자리에서 꽂혔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무슨 SF 영화에나 나올만한 판도라 행성 같은 풍경에,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하드코어 백패킹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여행 두 달 전에 발을 심하게 다쳤다. 발목을 7바늘 꼬멘 중상이었는데, 한 달 동안 실밥도 풀지 못하고 전혀 걷지를 못해서 목발 신세를 졌다. 출발 2주일 전에 목발을 빼고 절뚝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는데, 다친 부위가 발목 민감한 부위라 제대로 걸으려면 한 달 동안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게 앞에서 말한대로 멀쩡한 사람도 가기 힘든 곳이다. 뭐 안되면 나혼자 천천히 기어서 갈 각오를 하고 갔다. 이건 예약도 예약이지만 혼자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혼자가면 아마 한 60kg 짊어지고 가야할 듯)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주차장에서 캠핑장 까지의 약 20km 중에서 15km 는 헬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헬기 운영이 제멋대로라 심한 경우 7시간을 기다기도 한다는 것. (아침 몇시에 운행을 시작하냐고 물었더니, 그날 그날 다르다고 함. ㅡㅡ;;;;) 총 16명 중에 12명은 헬기를 이용하고 4명은 걸어들어갔다. 당연히 나도 헬기를 타고 들어가고, 나올 때는 걸어나오는 걸로 했다.
헬기운행이 시작하는 시간 (알고보니 제멋대로의 시작시간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에 맞춰 가기 위해서 밤 12시에 LA 에서 출발을 했는데도 (8-9시간 거리) 무려 3시간 반을 기다려서 헬기를 탄다. 이 지역은 인디언 관리지역이고 (그냥 인디언 땅이라고 보면 된다.) 헬기 또한 인디언들의 교통수단을 관광객들이 빌려타는 형태기 때문에 (물론 돈 낸다.) 줄 서 있다가다도 원주민 또는 생필품 짐 등이 오면 먼저 새치기를 해서 순서가 바뀐다. 좀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기다리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헬기장이 절벽 끝에 있어서, 뭐 그랜드캐년이랑 경치가 비슷하다. 사진은 지겹게 찍었다.
헬기 이동시간은 달랑 5분. 9시간 차타고 와서 3시간 반 기다리고 탄거 치곤 허무하지만, 와 정말 경치가… 그랜드 캐년의 절벽에 둘러싸인 마을. 여긴 캠핑장의 입구 마을일 뿐인데도 벌써 이 어려운 여행을 온 보람을 느낀다.
여기서부터가 이번 여행의 가장 난코스인 2마일 30kg 백패킹 행군이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이게 젤 어려운 코스일줄 알았지..) 발이 불편한 관계로 남들은 한시간에 간 거리를 나혼자 2시간 걸려서 갔다. 근데 경치가 정말.. 입이 떡~
가는길에 4개의 폭포 중 첫번째인 'Rock Falls' 를 먼저 지나고, 두번째인 'Havasu Falls' 를 지난다. 역시 사진으로 본거랑은 쨉도 안되는구나. 이런게 실제로 존재할 줄이야..
캠핑그라운드도 예술이다. 그냥 여기 살아도 되겠다. 아무 시설도 없다. (그래서 좋다!) 화장실 3동과 약수터 한개, 그리고 관리 사무실 한동이 전부이다. 그냥 숲속에 텐트치는거다. 예약 경쟁율은 치열하지만 막상 이 안쪽은 아주 한산하다. 미국은 자연경관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같으면 여기 완전 돗대기 시장이 됫겠지.
우리가 굳이 하바수 여행을 여름에 잡은 이유는 폭포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까 지나왔던) 'Rock Falls' 와 'Havasu Falls' 폭포에서 물놀이 한다. 어렵게 싸들고 온 진수성찬의 식사를 하고, 텐트에서 자는거 진짜 싫어하는데 뭐 피곤하니까 그냥 뻗는다.
두번째 날이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다. 세번째 폭포인 'Mooney Falls' 로 간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50미터 수직 절벽을 줄타고 내려가야 한다. 폭포에서 날라온 물기때문에 바닥도 미끄럽다. 상당히 위험한 코스이다. 내가 진짜 겁이 없는 편인데 (한밤중에 혼자 공동묘지 갈 수 있다.) 유독 고소공포증 하나가 심한 편이다. 겁나 무서웠다. (지금 보니까 판도라 행성이 아니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같다.)
하지만, 뭐 이런 장관이 다 있다니.. 한두시간 미친듯이 사진만 찍었다.
이제 네번째 폭포인 'Beaver Falls' 로 간다. 왕복 10km 하이킹이다. 험한 코스는 아니고, 짐이 가볍기 때문에 부담이 없는 코스이지만 난 다리가 불편해서, 남들이 한시간에 간 거리를 두시간 걸려서 갔다. 대신 가는 길이 또 다른 장관이다. 이런 그랜드캐년 같은 사막의 돌산같은 곳 안에 밀림처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Beaver Falls' 는 비버가 개울에 집을 지어놓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도 멋지다.
여기서 약 10km를 더 가면, 그랜트 캐년의 콜로라도 강 메인 줄기와 만난다고 한다. 다음번엔 일주일 정도 잡고 거기를 가보자고 한다. 글쎄, 원래의 나라면 바로 '노' 를 외쳤을 것인데, 좀 땡긴다. 그쪽으로는 오늘같은 가벼운 하이킹 코스가 아니다. 짐의 일부를 들고 백패킹 해야한다.
발이 영 불편해서 돌아갈때도 헬기를 타려고 했으나, 우리가 돌아가는 날인 일요일 아침.. 새벽 5시반에 일행들이 깨운다. 지금 사람들 전부 짐싸서 나가는 분위기라고, 우리도 빨리 나가야 한다고...
부랴부랴 짐싸고 다시 3km를 걸어서 마을로 간다. 아니 먹을걸 다 먹었는데 왜 짐은 똑같이 무겁냐고.. ㅡㅡ;;
마을에 와보니 헬기 대기자가 이미 장난이 아니다. 말로만 듣던 7시간 줄서는 분위기 였다. 이왕 여기까지 와본거, 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내가 미쳤지..) 대신 짐만 헬기에 부치기로 한다. 짐만 맡기고 걷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짐의 대기줄은 생각보다 짧고 가격도 저렴하다. (왜 짐을 맡긴 사람들이 없었는지는 한참 걸어보니 알게됬다. ㅡㅡ;;) 만약 짐이 생각보다 늦으면 까짓거 차에서 에어컨 틀고 한잠 자면 된다. (사진처럼 노새에게 짐을 맡기는 방법도 있다.) 결국, 헬기를 타고온 팀은 10시간을 기다려서 타고 왔다고 한다..
물 한 통과 카메라만 들고, 도시락은 아예 미리 뱃속에 넣어버리고 15km 행군에 나선다. 아침 7시반이지만 이미 온도는 30도를 넘은거 같다. 가는 도중에 40도도 넘을 분위기다. 이 코스는 나무도 거의 없는 진짜 사막이다. 구름도 한 점 없다. 젠장 더럽게 깨끗한 새파란 하늘이다. (Damn fine weather..) 가다가 죽더라도 오늘 또 사진 한장은 건질 수 있겠다..
난 아예 느린 템포로 천천히 걸었다. 사진찍으면서. 여유있게.
근데 생각해보니, 이번엔 마지막 돌아가는 길이라, 내가 너무 늦어버리면 같은 차를 타고온 우리팀 친구들이 나를 기다려야한다. 왜 그 사실이 이제 생각나는거지..
남에게 피해를 줄 순 없으니 좀 서두른다. 서두르니까 진짜 힘들다. 9시가 넘어가니 벌써 기온은 40도, 여긴 사막 한복판이고 구름 한 점 없다. 화장실? 매점? 그딴거 없다. 정말 여기서 쓰러지면 죽는 그런 느낌의 사막이다. 6시간 걸어가는 동안 우리쪽에서 걸어가는 팀 딱 한팀 만났고, 반대편에서 오는 팀 한 5-6팀 정도가 다였다.
11시쯤 되고 나니까 사진이고 머고 없다. 이젠 그냥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10km 정도 오고 나니까 거의 방전이다. 그늘도 거의 없어서 그늘만 보이면 무조건 거기에 눕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 발에는 감각이 없다. 차라리 잘됬다. 집에가서 다시 병원신세를 지더라도 일단 오늘을 넘기는데에는 발 아픈게 별로 걸림돌이 안되는거 같다. (아래 사진의 저 끝 너머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여기까지 걸어온거다.. 헐..)
13km 정도 오니까 헬기장이 보인다. 하지만 저 위에.. 약 500미터 절벽위에 있다.. 내 몸의 에너지는 1% 밖에 안 남았다. 이 상태로는 평지 2km도 걷기 힘든데, 500미터를 거의 수직으로 등반해야 한다.. (온도는 40도가 넘음..) 아래 사진은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사진이다. 저 밑에 물줄기 같은 트랙킹 코스를 따라서 절벽 밑에까지 왔다. 저 밑에서 여기까지 기어올라와야 한다.
마지막 1km 가는데 세시간은 걸린 것 같다. 10미터를 1분씩 걸었던 것 같다. 완전 슬로우 비디오로 걷는다. 누가 옆에서 봤으면 곧 쓰러질 사람으로 봤을거다. 정말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다. 나만 그런게 아니고 우리팀 전원이 다 그렇다. 그 와중에도 나는 5명 중 4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위 사진은 마지막 100미터를 남겨둔 지점이다. (목적지는 유턴해서 머리 뒤 쪽으로) 이 100미터는 내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이었지 싶다. 난 군대서도 이딴거 안했다. 학교때 5천미터는 진짜 껌으로 달렸던 사람이다. 지금도 골프백 둘러메고 40도 온도에서 18홀을 걸어서 치는 사람이다.
올라온 길을 돌아보고,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말한마디도 꺼내기 힘든 그 길에서 같은 팀원들이랑 몇마디 나눈다. 우리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단 무조건 콜라부터 원샷하자. 아 정말 100만원을 주고도 사 마셧을거다.
정상에서 콜라 2캔을 원샷하고 얼음물 한통 원샷하고 수박 한조각 원샷.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보람있다. 하지만 다신 안할거다. ㅡㅡ;;
친구들이 다시 한 번 오잔다. 내가 딱 잘라서 말했다. NO!!
미국은 자동차 캠핑의 천국이다. 우리가 아는 그랜드 캐년은 물론, 그랜드 캐년보다도 더 멋진 자이언 캐년이나 브라이스 캐년, 모뉴멘트 밸리, 아치스, 캐년랜드 모두 산속 깊숙한 캠핑장까지 차가 깊숙히 들어간다. 물론 베이스 캠프를 차린 뒤, 더 싶은 산속으로 심하면 20-30km를 하이킹 해야하는 코스들은 많다. 그런건 문제없다. 하루에 50km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백패킹 30kg은 다신 안할란다. ㅡㅡ;;
(2박4일 1인당 총 여행비용 $300 : 렌터카/기름/식재료/식당2번/캠핑장Fee/입장료/헬기, 헬기 안탔으면 총 비용은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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