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욕망

by 야생올리브

'맛있다'는 감각은 어디서 올까? 챗지피티처럼 두뇌로만 세상의 미감을 파악하고 첨언할 수도 있다만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도 '맛있다'의 진의에 지금 이르지는 못한다. 식품이 가진 분자구조의 형태나 이를 먹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으로부터 단서를 찾아도 어렵다. 특정한 맛이 난다고 해서 그 맛이 모든 사회, 모든 사람에게 일관된 정도로 '맛있다'라고 느껴질 리 없기 때문이다. 먹는 사람의 반응으로 미루어보면 '언제' 맛있다고 하는지는 확인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진정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맛있음을 느끼게 하는지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의 감각 또한 훨씬 더 정교한 수준으로 해체되고 속속들이 디지털화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저 욕망의 실타래도 모두 풀려서 한가닥 한가닥이 전부 계량될 수 있으리라. 마침내 '맛있다'는 감각도 하나의 데이터 또는 매트릭스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이다! 오늘까지는 사람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래서, 대체 무엇을 볼 수 있느냐"라고 즉답을 요구한다면, "양적 연구나 할 것이지 뭣하러 정치사상 공부하냐"라는 질문을 들은 대학원생처럼 땀을 삐질삐질할 수밖에 없다. 고심 끝에 담론이니 맥락이니 어려운 단어를 주저리주저리 나열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실상은 나의 감각과 욕망만 온전히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니깐. 조금 양보해서 그 주관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고를 요리조리 조립해 보는 시도, 딱 그 정도만 더할 수 있겠다. 다소 무력하지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렇게 주관적 감정으로서의 '맛있음'을 온전히 응시하고자 그 안에 담긴 욕망을 헤아려 보기로 했다. 적어도 나에게 맛있다는 개념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뜬구름이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감각으로 내가 직접 경험하는 어느 시간의 편린이다. 그 욕망의 감각은 때로는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꽤나 변덕스럽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 감각 때문에 내 안에 먹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할 수 있음은 확신한다.


쉬운 이야기를 참 어렵게 하는 재주가 있다. 역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써보자면, 맛있다는 느낌과 함께할 조건들로 다음과 같은 예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음식을 섭취하기 전에 어떤 감각을 기대하는가 (욕망의 대상)

- 담백하고 슴슴하되 고소한 향

- 칼칼하고 짭조름한 국물의 목 넘김-

- 혓바닥을 가볍게 누르는 바디감

- 입을 얼얼하게 만드는 새큼달큼함


2) 어떤 방식으로 충족되는지도 중요하다 (욕망의 충족 방식)

- 예상치 못한 반전의 맛

- 한껏 기대하던 익숙한 맛

- 급하게 들이켜야 하는 상황


2-2) 취식이 완료된 시공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도 빠질 수 없다 (다른 욕망들과의 조화)

- 여자친구와 기념일을 보낸 고풍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파인다이닝

- 서비스가 개판이어서 재방문의사가 전혀 생기지 않은 무늬만 대박 식당

- 여행 간 친구들과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누빈 나른한 거실


즉, 맛있다는 감각은 내가 기대하는 욕망들과 그것을 충족시키는 상황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심포니라고 부를 만하다. 무엇을 맛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분명 나의 어떤 욕망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니깐! 그 충족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거나, 구체적인 수단을 예측하지는 못했더라도, 어찌 됐든 충족이 되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전 글에 남긴 질문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왜 맛있느냐'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왜 욕망하느냐' 또는 '왜 충족되느냐'를 질문해야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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