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최근 한국 음식의 변화가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소위 '뇌절'이 너무 심하다고 인식한 그 시점부터,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 방식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마라 로제 크림 등 온갖 소스를 섞는 방식이나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의 빵은 식욕만 자극할 뿐 좋은 식사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고, 온갖 음식들을 한데 모아서 먹는 방식 또한 게걸스럽다고 여기곤 했다. 구성이 정갈하거나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한 음식을 찾아서 입에 넣을 때만 '한국의 맛'이라고 유별 떤 것을 보면, 태생부터 서민인 주제에 '나는 달라'라고 뽐내고 싶은 허영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나도 막상 그 과한 음식을 먹었을 때 맛있다고 느낀 적이 적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기똥찬’ 쾌감을 느낄 때가 너무 많다. 한 번은 친구가 유명 도넛집에서 정말 크림이 한가득한 도넛을 사 온 적이 있다. 도넛에 크림을 추가했다기보다는 크림에 도넛을 얹은 듯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는데, 가뜩이나 튀긴 빵에 지방 그 자체인 크림을 넣었다는 점에서 혈관 건강이 걱정될 정도였다. 보나 마나 너무 느끼하고 달진 않을까 의심했지만 사온 성의를 생각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달달함과 고소함이 끝도 없이 밀려들더라. 정말인지 '폭력적인' 맛이었다. 입이 터진 나는 스스로를 멈추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친구의 도넛을 다 해치워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혐오해 마지않는 게걸스러운 모습으로 그저 입에 욱여넣기에만 몰입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많은 음식들이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그때 알았다. 한없이 늘어나는 치즈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꾸덕한 초코를 덕지덕지 발라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그 원초적 전략이 먹혔다. 그 자극적이고 풍부한 감각이 맛있다는 느낌과 자주 동일시되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 맛있다는 감각은 미뢰에 음식이 닿기 전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씹고 혀로 감싸서 목에 넘기기도 전에 살아 있었다. 음식을 보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눈을 떼는 것이 어려웠고, 마치 택시미터기에서 발을 구르는 말처럼 내 안에 무엇인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단 내 속으로 밀어 넣고 싶어 한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먹는 감각처럼 보편적이면서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행위가 있다니...! 대상을 파괴하고, 음미하고, 내 존재의 일부로 만든다. "You are what you eat!". 유럽여행길에 우연히 웨스트민스터에서 들은 성찬식 설교가 떠올라 다소 불경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만족 또는 좌절시키기까지 정지시킬 수 없다는 점도 놀랍다. 먹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식사라는 긴 과정을 끊임없이 수행한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먹는 행위 자체는 기껏해야 음식을 집어 씹고 넘기는 것이지만, 식사 일반은 욕구를 달래는 종합적 의례에 가깝다. 먹는 행위는 잠깐 중단하고 쉴 수 있지만, 식사는 욕구가 해소될 때까지는 멈춰 선 안 된다. 음식의 외형과 냄새를 만끽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날의 식사를 되새기고 여운을 만끽하는 마지막 과정까지 거쳐야 참 식사이다.
그런데 '과한 음식'을 먹을 때의 욕망의 해소는 유독 생동감 넘친다. 크림을 잔뜩 얹은 도넛의 한입을 베어 물기 위해 크게 벌리는 입, 그 입으로 밀려드는 부드러움. 거기서 느끼는 만족은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다. 식사라는 긴 과정을 한 입 한 입의 먹는 행위에 액기스만 집약적으로 담았다고 해야 할까? 몇 번의 먹는 행위만으로 벌써 욕구가 해소된다. 더 빠르고 강하게 달려오는 도파민. 무엇인가를 내 안에 채우는 과정임에도 파괴적이라고 부를만하다.
조합된 음식도 유사하다. 여러 재료를 거창하게 섞어 동시에 밀려드는 감각은, 여러 요리를 동시에 조합해서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음식에는 그런 조합이 참 많다. 바삭하게 튀긴 분식돈가스와 새콤탱글한 쫄면을 같이 씹을 때의 그 행복감, 매콤한 닭발에 소스를 찍어 올리는 주먹밥 등등, 애정하는 맛을 한 번에 입에 넣는 즐거움은 꼭 양질이라 부를 순 없지만 크기로 보자면 꽤나 상위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