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부유하는 식(食)에 대한 무한히 다양한 욕망을 단일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감각에 비추어보았을 때 최근 변형과 조합에 반영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크고, 많고, 다채로울 때 맛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풍성함'에 대한 지향이 있다고 할까? 한입 와앙하고 넣었을 때 입 안을 가득히 점령하는 충만함에 대한 욕구, 그것이 다수의 '맛있다'는 감각을 형성하는 기제인 것 같았다. 변형되는 식품은 상당수가 그런 풍성함에 대한 지향과 함께 한다.
글쎄, 고봉밥을 포함해 엄청난 식사량으로 외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조선인의 식성이 우리 유전자에 남아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적인 양의 관점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만들어내고자 하는 감각과 투영되는 욕망이 풍성함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조금 결이 달랐다.
크림, 초코, 치즈, 향신료가 가득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음식이 유행한다. 복수의 맛이 난립하고 서로 섞이면서 입안을 가득 채우는 조합이 자리 잡는다. 여백 없이 꽉 차는 감각, 끊임없이 어우러지는 채움이 느껴질 때 우리가 욕망한 '맛있음'이 향유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맛의 조화는 입 안에서 동시에 씹히거나 그리 큰 시간차를 가지지 않고 느껴질 때 큰 위력을 발휘한다. 고기를 온전히 다 씹고 넘긴 뒤 채소와 양파절임을 따로 먹는 사람을 감히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다 함께 버무려서 입 안 가득 다채롭고 풍성한 느낌을 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
충만한 욕구와 감각의 흔적은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앞서 여러 재료나 음식 간의 조합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최근 주목받는 맛의 조합 또한 여러 가지 속성이 함께 한다는 특징이 있다. 단짠단짠, 맵단짠, 겉바속촉 등 서로 다른 종류의 미감을 식사를 통해 모두 느낄 수 있을 때 그 식사는 성공적으로 평가받지 않던가. 당연히 아무렇게나 섞인다고 되지는 않는다. 그 맛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조화를 따진다는 건 다채로운 맛이 동시간 또는 연속적으로 음미되는 상황을 전제한다. 결국 다수의 미각을 함께 깨워야 완성형의 맛이다.
생각해 보면 세숫대야 냉면, 왕돈가스를 필두로 하여 대왕 카스테라, 점보 라면까지 큰 음식의 바이럴도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이전에는 뭣 하러 쓸데없이 크기를 키울까 생각했다. 크기를 키우면 필연적으로 음식의 일부분을 식고, 눅눅하고, 덜 신선한 상태로 먹어야 한다. 정형화된 맛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봤을 때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풍성한 감각에 대한 욕구를 기준으로 하면, 크기가 큰 것이 곧 그 자체로 효율적인 전시가 된다. 가득 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 보장된 포만감, 그것이 곧 '맛있다'는 감각의 일부로 여겨진다면 이 얼마나 효율적인 전략일까?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외식업계 사람들의 본능적 통찰이 부러워졌다.
무한리필, 뷔페, 그리고 한동안 유행했던 오마카세도 이런 욕망의 연장선에 있다. 장바구니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것도 분명 한몫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더 많이, 더 다양히 먹기 위한 세팅이니 말이다. 끊임없이 접시를 보충하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보는 시도, 그 안에 풍성함에 대한 지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