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野食)

by 야생올리브

식문화 카테고리에서 '한국적'이라고 느껴지는 영역은 또 있다. 바로 야식이다. 배달 인프라가 발달한 탓도 있지만 유사한 조건의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 야식은 더 강렬한 느낌이 있다. 유행하는 메뉴가 확실히 묵직한 편이기 때문이다. 양이 많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이다. 치킨, 피자, 라면, 족발, 마라탕, 떡볶이 등, 포만감을 끝까지 줄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야식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고구마 말랭이나 샐러드는 간신히 허기를 간신히 달래는 간식으로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야식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생애 거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낸 나에게는 야식 문화가 이미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다. 배달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에도 전단지는 친절히 현관문 앞에 붙여져 있었고, 야식을 자주 먹는 편이 아닌 가정에서도 선택지는 항상 보장되어 있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과 24시간 편의점은 논외로 해도 한국의 야식은 이미 차고 넘친다. 다이어트 실패 이유로 야식을 그려내는 에피소드도 어려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으니 한국인이면 모두 그 치명적 유혹에 시달리는 일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특히 수험생 시기를 통해 그 문화가 몸에 배어 들었던 것 같다. 힘들게 야간 자율(사실상 타율) 학습을 하다가 잠시 한숨을 돌리며 들었던 치킨 한 조각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진 빠진 육체를 위로하기 위해서 생기는 '원초적' 욕망이랄까. 생각해 보면 원초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지는 않다. 선사시대에는 해가 다 져 버린 늦은 시간까지 머리를 꽁꽁 싸맬 필요는 없으니깐. 그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괴상한 타임라인에 놀란 유전자가 내 뇌로 하여금 원초적이라 느껴질 만큼 강렬한 욕망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유전자 입장에서는 억울할지도! 사실 야식과 생존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사냥도 채집도 하기 어려운 밤에 굳이 소화와 수면에 방해되는 음식을 욱여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니 야식을 먹고 싶은 욕구는 다분히 사회적 구성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수많은 광고와 먹방이 우리로 하여금 야식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인지도.


그렇게 야식을 허겁지겁 들이켰던 수험시기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니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상태는 보이는 것만큼 충만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여 푸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왕성한 식욕을 음식에 투사했던 건 아닐까? 맵고 짜고 단 음식을 통해 말초신경에 쾌감을 주입했던 모습이 떠오르면 철도 씹어먹을 위장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지, 아니면 오히려 연민의 모습으로 보아야 하는지...!


물론 야식 습관이 수험생활과 함께 종결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업무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물밀듯이 몰려오는 식욕에 놀라곤 한다. 특히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한 데다 귀가시간마저 늦어버린 경우, 밀려오는 허기에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먹을 음식을 생각하는데만 생각을 소모한다. '먹을까 팀'과 '말까 팀'이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지만, 거의 언제나 '먹을까 팀'이 승리한다.


고된 하루를 위로하는 귀중한 한 끼일까? 하지만 여기서도 복잡한 심리는 이어진다. 망가지는 몸의 사이클을 마냥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낮에 담배를 뽀끔뽀끔 하는 여의도 아저씨들의 볼록한 배를 떠올리니 더더욱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가 않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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