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무슨 게임? 100번도 넘게 주문을 외우며 팔을 휘젓는다. 지면 마시고 이기면 멕이는 그 단순한 룰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A, 눈동자에 초점이 나간 B, 심지어 그 자리서 그대로 잠든 C도 있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C의 머리 위에 기본 안주인 꼬마 뻥튀기를 하나 둘 올릴 때마다 주변 모두가 자지러진다.
잠시 집중력을 잃으면 벌주에 걸리기 십상이다. "마셔! 마셔! 먹고 죽어!". 자동으로 플레이되는 브금에 잔을 멈출 시간이 없다. 한참을 마시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쓰러진 전우들이 한 둘이 아니다.
최후의 승리팀을 가려내려 끝까지 달리는 생존자들을 피하려다 어떤 선배와의 진지한 대화 자리로 소환되기도 한다. 대화는 나른하고 지루하지만, 그럴수록 술잔은 멈추지 않는다. "무리하지 마, 안 마셔도 돼"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염려의 겉치레를 쉬지 않고 반복하며 다시 술잔을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 대학생활을 즐겼던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익숙한 레퍼토리이다. 우리나라의 먹는 문화, 특히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문화에서 술은 빠질 수 없다. 갓 성인이 된 친구들이 함께 모여 소회를 나눌 때도, 대학에서 과나 동아리 사람들과 각종 모임을 할 때도,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도 술은 꾸준히 함께 한다.
젠지(Gen Z)의 '소버 라이프'가 도래하기 전 술문화를 되돌아보니 퍽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마시면서 배우는' 술게임 문화가 젊은 나이부터 술에 대한 경각심을 없애는 데 기여했으니 말이다. 새 학기 엠티에 가서 필름이 끊기고, 구토를 하며, 난동을 부리거나, 기어 다니고, 결국에는 인사불성으로 뻗는 모습은 다른 술자리에서의 씹을 안주 정도 되는 젊은 날의 호기로 남았다. 실컷 공부하고 들어온 대학, 젊을 때 더 놀라며 무절제한 음주를 권하는 선배들은 지금도 여전히 많지 않나. 대마초는 의료용마저 엄격히 검증하던 어르신들이 중독성, 유해성 면에서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술에는 어찌 그리 관대한지 신기하기도 하다.
금융권, 법조계 등에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 이런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술이 여전히 주요한 대화의 수단이다. 워라밸 없이 그렇게 바쁜 삶에서도 술을 나누는 시간은 꼭 챙기는 게 놀랍기도 하다. 또 몇몇 직군에서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술자리가 중요해지는 현상은 지금도 꽤나 공고해 보인다. 영업을 따와야 되는 시니어의 무기가 술과 유흥이지 않길 바랄 수는 없을까.
1차, 2차, 3차까지 쭉 달리는 회식도 우리의 '달리는' 술문화를 권한다. 안주를 바꿔가며 술과 대화의 농도를 높여가야 되니깐... 취기는 나른하지만 행동은 취한 정신을 향해 질주하는 양상이랄까. 엔간히 절제하는 사람도 그 노선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탑승하는 순간 자기를 지키기 어렵다. 마시면 마실수록 술을 더 부어야 하고, 채워도 채워도 계속 비워야 한다. 더 밀어 넣을 수 없는 상태까지 나를 몰아붙이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다. 다음날 잠에서 깨면 이는 강한 허기에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라고 소리치지만, 언젠가 또 그 허기를 향해 달릴 게 분명하다. 해장으로 먹는 라면의 시원함을 기억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