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오픈으로 쓴 맛을 본 적이 있다. 커피의 '커'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 북카페의 '북'에 단단히 꽂혀가지고는 별별 유별을 떨었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망한 스타트업이면 다 가지고 있을 법한 구구절절은 있지만 차마 여기 담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패인은 꼽을 수 있다. 커피가 잘 팔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뷰가 끝내주게 좋아서 사악한 가격이 용인되거나, 베이커리나 브런치 메뉴가 식당처럼 팔려나가는 곳이 아니라면, 카페는 결국 커피로 승부를 봐야 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수많은 카페들을 부양하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커피를 높은 회전율로 많이 파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숨 쉬듯 팔려야만 한다. 특히 직장인 상권에서는 70%의 손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고, 나머지 30%가 그 외 음료를 찾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잘 팔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카페 시장을 지탱하는 이 수요의 파이를 나눠먹을 자격이 없음을 의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원한 미국식 커피'를 왜 이렇게 좋아할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직장인들의 아침과 점심에 꼭 한 손에 들고 있는 그 커피, 남녀노소 삼삼오오 모이면 개중에 몇은 꼭 시키는 그 커피! 커피 종주국도 이 정도 열정은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이 열정을 제대로 고찰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일지도 몰랐다.
커피는 다른 음료들에 비해 향이 강한 편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익숙해서 쉽사리 의식하지 못하지만, 커피 원두를 몇 번 갈면 머리카락에 냄새가 배길 정도다. 맛 또한 강렬하다. 커피가 들어간 음료와 들어가지 않은 음료로 카테고리가 나뉘어 자리 잡힌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이리라. 커피와 함께 다른 음료를 마시면 맛이 확연히 반감되어 버리니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맛은 강렬할 뿐만 아니라 다채롭기도 하다. 쓴맛과 고소한 맛의 적절한 배합이 혀를 휘어잡고, 원두에 따라 신맛이 입 안의 가장자리를 타고 돈다. 시럽 몇 방울 뿌려 만드는 천편일률적인 음료는 따라오지 못할 깊이다. 바디감이나 후미까지 고려하면 그 복잡 미묘함은 한 차원 더해진다.
그런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 강렬한 다채로움을 원하는만큼 들이킬 수 있게 해 준다. 맛과 향을 입과 코에 쏟아붓는 모양새랄까. 크게 한숨 쉬고서는 꿀꺽꿀꺽 넘겨도 되고, 테이블 옆에 두고선 쪽쪽 빨아도 된다.
바로 거기에 한국 사람들의 선호가 반영되는지도 몰랐다. 풍부한 향과 맛을 편리하게 충전하기! 물은 너무 심심하고 다른 음료는 레이어가 충분치 않다. 음식은 단짠단짠이 대세라면, 음료에는 다른 방식의 풍부한 조합이 요구되는 것이다. 고소하고 묵직하고 시큼하고 쓰고 달고 짭짤한 그 맛! 오미자차보다 더 현대적인 그 오묘한 조합이 우리를 사로잡은 것 아닐까
물론 커피를 논할 때는 맛만으로는 부족하다. 카페인을 빼놓을 수 없다.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카페인을 수혈할 커피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만한 뻔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카페인이 만들어내는 각성 상태의 영향에는 많이들 둔감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카페인 민감증이 심한 나는 커피를 들이켤 때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원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날 선 신경, 두근대는 심장, 그리고 영혼까지 끌어다 모은 집중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켜는 것만으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는 그 각성 상태가 꽤나 중독적이다.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 예민한 감각과 허한 느낌이 함께 동행한다. 나른하고 쾌활한 하루 대신 경주마의 정신을 이식하는 느낌! 또 이 느낌은 사실 정신에 국한되지만도 않는다. 그 무엇보다 혀가 마르는 갈증. 분명 무엇인가를 실컷 마셨는데도 이내 목이 마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고자극 카페인을 내보내기 위해 내 몸의 물을 쏟아내다 보니 탈수 증세도 동반되곤 한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고 피곤이 몰려오면 어김없이 다시 이 카페인을 다시 찾게 된다. 물론 천천히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는 사치를 부릴 순 없다. 얼른 시원한 미국식 커피를 흡입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