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샤넬을 찾아가는 길 <프롤로그>
지난 2년 동안 나의 손에 들어온 모든 샤넬 관련 책을 섭렵하고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향을 준 장소의 대부분을 찾아서 여행을 하고 많은 생각과 느낌이 쌓일수록 점점 더 그녀를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왜일까?
정말 미인이고, 대단한 디자이너였으며 당대에 최고의 성공을 거머쥔 그녀를 압축해서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존 버거’가 쓴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을 읽으며 딱 들어맞는 구절을 발견했다. 아래 인용하는 구절은 ‘가브리엘 샤넬의 머릿속 생각을 글로 옮긴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될 만큼 들어맞았다.
남자의 사회적 존재는, 그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능력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우리가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면, 그의 존재는 아주 중요하고 커다란 비중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보잘것없거나 의심이 가는 것이라면 그의 존재는 곧 별 볼일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때 그 남자가 지녔다고 생각되는 능력은 정신적인 것일 수도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성격적 경제적 사회적 또는 성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대상은 늘 그 사람의 외부에 존재한다. 달리 말해 한 남자의 존재감은 그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존재감은,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는 경우, 가짜로 만들어진 허위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장도 결국 그가 다른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 여자가 드러내는 사회적 존재는 그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여자의 존재는 그녀의 몸짓, 목소리, 의견, 표정, 옷차림새, 그녀가 선택한 장소나 환경, 기호나 취향 등 그녀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모든 면과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을 늘 감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그녀 인생의 성공 여부가 걸려 있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 여자가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갖는 생각은 이렇게 타인에게 평가받는 자기라는 감정으로 대체된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하기에 앞서 우선 여자들을 살펴본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이 결국 어떻게 대접받을지를 결정짓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줄 것 인지에 확실한 전략이 있었으며 자신의 인생에 필요한 남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볼 줄 알고 선택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느꼈지만 그것을 내가 글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이 책을 읽다가 내가 느낀 가브리엘 샤넬을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글귀를 인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지난 세월 내가 남자에게 선택된다고 생각하거나 남자를 너무 모르고 허술한 여자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20대에 이 글을 읽고 여자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좀 더 깊이 노력하였다면 아마도 지금쯤 다른 여자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을 뒤늦게 요란을 떤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된다.
내가 프롤로그에 이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존 버거의 글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느꼈던 느낌이 고스란히 적혀있어서 어쩌면 나머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뭐든지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