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날, 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까지
숙소에서 나름 일찍 일어나서 출동 준비를 끝마쳤지만, 주방에서 커피 마시고, 수다를 떠니라 알베르게 숙소를 나선 것은 7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전날 알게 된 이태리 언니들이 있었는데, 아침에도 그분들과 같이 수다를 떨면서 에스테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날 난 그 언니들의 가족들과도 화상 통화를 하고, 아침에도 같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다량의 사진까지 찍었지만, 정작 내 카메라에는 그들의 사진조차 없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추억하려 기억의 단편들을 모았지만, 난 그런 작업을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남들과 별다르게 마음을 엮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만났으니, 이야기하고 친하게 굴었지만 헤어져도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을 둘렀나 보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언니들도 무척이나 그립다. 이 언니들뿐만 아니라 이쯤에서 만났던 많은 순례자들이 나에게 다가오려 할 때마다, 난 뒷걸음을 쳤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라는 베이컨의 '경험주의'에서 논의된 '잘못된 편견으로 오는 지식의 경험 오류'가 나를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었나 보다. 초반에 겪였던 감정의 소용돌이 때문인지 이상한 트라우마에 갇혀 마음을 나누려는 주변 사람들과 나만의 거리를 두었다.
에스테야를 벗어나면 조용한 주택단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작은 마을을 지나자마자 시골길의 비포장도로를 지나기 시작하고 그 길에서부터 장대한 포도밭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길 초입쯤에 그 유명한 와인 분수가 있다. 와인을 만드는 와인농장에서 순례자를 위해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개방한 곳이다. 1891년에 설립된 이 이라체 와이너리( Bodegas Irache)의 관대한 배려로 아침부터 모닝 와인으로 갈증을 달래준다. 갓 만들어진 와인이 수도꼭지에서 콸콸 나오는데, 숙성이 전혀 되지 않은 어린 와인 치고는 맛이 좋다. 아마 공짜라는 사실에 업된 기분에 맛이 좋았나 보다.
와인 분수도 좋았지만, 난 와인 분수 가기 전에 위치한 헤수스(Jesus)의 대장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의 헤수스는 가업을 이어 이곳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몇십 년간 이곳에서 일을 해오신 그의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밖에서 일은 안 하시지만, 아직도 안쪽에서 일하신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온 대장장이와는 전혀 다른 체형을 가진 헤수스는 마르고 가녀린 체구 너머로 크고 강한 쇠를 연마하고 있다. 그래서 투박하고 차가운 금속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소품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주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이지만, 순례자들을 위해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유니크한 제품이라 가격이 조금 세도 구입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기념품의 수입이 꽤 짭짤할 듯하다.
헤수스의 대장간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도장을 찍어주는데 그 모양에 의미가 있다.
론세스바이예스에서 아예기(Ayegui)까지 100킬로라는 글자가 세겨진것인데, 왜 생장이 아니고 론세스바이예스가 기준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원래 스페인 사람들은 프랑스 영역의 생장이 아닌 스페인 영역의 론세스바이예스에서 카미노 길을 시작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포도농장이 계속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겨움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포도농장이 있다는 것은 포도가 잘 자라는 적당한 재배환경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강수량이 높고, 따뜻한 환경에, 일조량이 많고 강하며, 건조기후가 잘 유지된다는 것이다.
지루하고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난 부정적인 무드가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커지고 있었다.
입술이 갈라지는 건조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이 걷는 내내 나를 공격해 오고 있는 데다가, 오늘이 겨우 6일 차인데 앞으로 이 짓을 3주 이상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 카미노가 점점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바닥을 친 기분 상태에 입에서는 욕지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미친년, 여기는 왜 와서 이리 고생이야!!'
스스로에게 욕을 하며 반나절을 구시렁거렸나 보다. 왼발의 물집도 물집이지만, 그 때문에 절뚝거리는 내 꼴도 우습고, 지겨운 이 길도 별 의미를 못 느꼈기에 실망의 카미노라 섣불리 단정하고 한창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나의 감정의 굴곡이 깊숙이 밑바닥을 치고 있을 때, 에릭을 만났다.
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에서 오스트리아에서 온 스테판과 합석을 했다. 걸음이 나보다 빠른 그이지만,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느라 꽤 많이 쉬는 그이기에 우린 이런 식으로 자주 만났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그는 담배가 더 늘었다고 했다. 담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또 다른 이는 끊었던 담배를 카미노에 와서 다시 시작했다고 하니, 카미노도 나름 각자에게 마음의 무게를 더 해주나 보다.
여하튼 스테판과 식사를 하는 중에 에릭이 들어와서 합석을 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 오자마자 우리를 보더니 큰 소리로 넋두리를 하는 그에게서 피식 웃음이 났다.
프랑스 샹송이 울러 퍼지는 기분 좋은 식당에서 그는 이놈의 지긋지긋한 카미노 길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둥, 지긋지긋하다는 둥,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건조하고 메마른 기후가 내 마음을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내고 있었는데, 나보다 더 심하게 메마른 그의 불만을 들으니 왜 이리 웃음이 나던지..
다 큰 어른이 징징대며 울상인데, 그의 말투가 너무 웃겨서 난 배를 잡고 허리를 말며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어찌 늘 위만 바라보고 사냐? 가끔 나보다 처지가 아래에 있는 사람을 보며 위로를 삼을 수도 있는 거지'
늘 입버릇처럼 읊어대던 나의 모토가 다시 한번 상기된 날이다.
나보다 훨씬 울상인 그를 보고 있노라니, 우울하고 지쳐있던 내 마음에 즐거운 기운을 불어넣어져 결국 난 나의 불만을 잊어버렸다.
게다, 더 웃긴 것은 그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넋두리하는 것이다.
미국 중부의 한 로펌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영국 아일랜드 출신이다. 그가 있는 미국 중부 사람들이 그의 영국식 혹은 아일랜드식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어 스트레스를 무지하게 받고 있었고 결국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인이 미국에서 영어 때문에 곤란을 겪으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는데, 그의 처지가 묘한 동질감과 함께 위로와 안심을 주었다.
"너, 근데 멕시코인 후안 보지 못했니?" 에릭이 뜬금없이 후안의 거처를 물었다.
"아니! 왜?"
"그 친구가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내 스틱 빌려주었거든. 근데 지금 내 무릎이 아파서 돌려받아야겠어. 그 친구 보면 내가 다음 알베르게에 오늘 쉬겠다고 전해줄래"
"그래, 그럴게"
"그 스틱 중요한 거야"
"왜 중요한데?"
"그거 우리 엄마 거야. 엄마가 그거 빌려주면서, 스틱 없이는 다시는 아일랜드 땅을 밟지도 말랬어"
50살이 다 되어가는 덩치 큰 애아버지가 엄마를 운운하면서 징징거리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고 재미있던지...
그날 오후, 난 길에서 에릭 엄마의 스틱을 가지고 걷는 후안을 만나서 에릭의 거처를 전해주었다. 물론 에릭 엄마 스틱에 대해서는 아무 말하지 않았고 그냥 에릭을 찾는다는 소식만 전해준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스틱 없이 걷는 후안을 만났으니 그 '엄마 스틱'은 무사히 에릭손으로 갔을 것이다.
그 후 며칠 후, 에릭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벤치에 앉아서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못 여유 있고 자애로운 표정이었으니, 그도 나처럼 바닥을 친 감정이 서서히 안정을 찾았나 보다.
에릭과의 점심 식사 이후 기분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후 걸음은 한국 처자 두 명과 같이 했다. 이틀 전 용서의 언덕에서 처음 안면을 튼 그 두 처자들은 사춘기 소녀처럼 잘 웃고 밝은 기운이 넘쳐나서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엔 웬 독일 노신사분이 찰싹 붙어서 떨어질 기색이 없어 보였다.
어찌나 철저히 그분이 그 두 처자를 전담 마크하고 있던지, 난 둘 중 하나와 그 노신사분이 커플인 줄 알았더랬다.
잠시 내가 끼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노신사분은 날 철저히 경계하고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그녀들과 같은 한국 여자인데도 저리 경계하는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떠했을지 예상이 된다.
두 처자에게 원래부터 아는 사이냐 물었더니 생장에서부터 같이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붙어 지냈고, 그 그 신사분이 그녀들을 무지하게 챙겨줬다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그 상황은 꽤 부담스러운 일이다. 붙어다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새로운 멤버를 경계하고 틈을 안 주며, 딱 셋만 다니려고 하면 조만간 그 피로감이 커질 것이 뻔했다. 게다 그 분의 상태을 봤을 때, 산티아고까지 그녀들과 같이 다닐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뭔가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오지랖을 떨 일이 아니라서 그녀들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노신사분이 안 보인다.
그 분의 안부를 물으니, 오늘 아침에 길이 엇갈려 헤어졌다고 했고 완곡한 표현으로 그녀들도 슬슬 그에게 지쳐갔다고 했다.
그녀들과 같이 까르르 웃으며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까지 왔다. 길에서 웃고 오느라, 지루한 틈이 없었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와보니, 팜플로나에서 알게 된 한국 청년 둘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같이 저녁을 하기로 했다. 저녁을 주문하러 간 식당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 독일 신사분은 나타났다. 길이 엇갈린 상황에 화가 난 듯 보였는데, 어쩜 테이블에 앉아있는 우리의 형태에 당황해 보인 듯도 했다.
젊은 청춘 남녀 둘둘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으니 마치 미팅 자리 같다. 게다 나는 한쪽 모서리에 따로 앉았으니 주선자 같은 꼴이다. 그것보다 비슷한 또래의 청춘 남녀들이 뿜어대는 열기와 한국어로 떠들며 웃는 모습에 그 독일 신사분은 뭔가 주눅이 든 표정이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
뻘쭘한 표정으로 그녀들과 연락처만 주고받고 헤어지는 그 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인다.
만일 그가 그녀들에게 전혀 흑심이 없었다면, 그도 쿨하게 같이 동석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뭔가 소유욕으로 가득 차서 그 누구도 그와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게 방어막을 쳐왔기에, 지금 그는 되려 보이지도 치지도 않은 지금의 방어막을 감지하고 사라진 것 같다.
순례길 처음으로 한국인들하고만 함께하는 저녁이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한국말로 꽤 떠들었던 것 같다. 뭐 물론 다국적의 순례자들도 틈틈이 같이 섞여서 수다를 떨었지만, 모국어로 지껄이는 간만의 편안함에 흥이 났다.
로스 아르코스의 공립 알베르게는 9시 반에 마감을 한다. 그래서 오스피탈레로 (알베르게직원의 호칭: 주로 자원봉사자)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우리를 포함한 다른 순례자들에게 숙소로 들어가 휴식을 하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한창 술이 오른 다른 그룹의 순례자들이 계속 놀겠다며 실랑이를 했고, 결국 쫓기듯이 숙소로 들어왔다. 난 다른 한국인들과는 달리 새로 만든 간이식 건물인 별채를 썼는데, 술을 계속 마시겠다는 그룹도 다 나와 같은 방이다. 별채 건물로 쫓기듯이 들어온 그들은 방문과 화장실 앞의 간이 휴게실에서 술을 마시며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밤늦도록. 이게 무슨 민폐인가!! 덕분에 잠을 설친 난 다음날 아침부터 꽤 구시렁거렸는데, 아뿔싸!!!
아침에 구시렁거린 그 기억은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고, 내가 그 민폐 짓거리를 하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