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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Oct 10. 2019

#5. 용서의 언덕과 시간을 느리게 달리는 소녀

네쨋날,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데 레이나까지

                                                                           

 

 4월의 첫 번째 월요일, 순례길 4일 차를 시작하기 전에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순례길을 시작했기에 실제로는 월요일인 오늘이 6일 차이지만 4일 차라고 한 이유는 주말 동안 바스크 북쪽의 산세바스티안 마을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지라 주말에만 자유시간이 가능한 페르민 때문에 수, 목, 금요일은 순례길을 다녀오고, 토. 일요일은 그와 바스크 지역 여행, 그리고 월요일부터 다시 순례길을 시작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란 어려운지라 난 순례길 초반을 쪼개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었었다. 

주말에 쉬면서 재충전했을 거라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팜플로나 도착한 금요일부터 미친 술파티를 벌렸으며,  주말 동안의 산세바스티안 여행은 혹독할 정도로 고생한 여정이었기에  피로가 계속 누적되었다.  바닷가에 소풍을 나갔다가 갑자기  몰아닥친 폭우로 쫄딱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할 곳 없는 완전히 오픈된 바닷가에서 맞는 아주 커다란 우박은 거의 살육의 현장에 가까웠다. 덕분에 때론 여행이 카미노 길보다  더 고생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요일.
 페르민은 그냥 그가 마련해준 거처(그의 조부모님 집)에서 지내다 월요일에 순례길을 출발하라고 했지만, 난 왠지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팜플로나 시내의  순례자 알베르게로 숙소를 옮겼다.
축제는 끝났고, 알베르게로 가야 왠지 순례자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팜플로나 시내까지 깜빡하고 자칫 버스를 탈뻔했으나, 정신을 차리고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다시 순례자의 길을 떠났다. 순례길을 처음 시작할 때, 숙소에 두고 간 장기 여행용 짐까지 가방에 넣으니 무게가 상당했지만, 평소에도 그러하듯 난 내 가방의 무게에는 불평불만은 전혀 없다. 
대신, 감정의 무게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팜플로나 시내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못 느꼈던 감정이나 상황을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니 이해하기 시작한 부분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새로움에 대한 공포'이다. 나에겐 새 학교, 새 직장, 새 환경들, 새로운 사람들은 설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 환경을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는 그 상황이 어쩌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고 이제야 그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전학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기에 전학생의 그 낯선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 꼭 내 심정이 전학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만들어진 기존의 친밀한 유대관계의  그룹에 낯설게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혼자 시작했고 혼자 온 길인데 왜 어리석게도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첫날부터 같이 피레네 산맥을 넘은 고생을 같이 해와서 그런 것인지, 아님 먼저 떠난 스테판으로 인해 감정의 공유가 커서인지 첫날부터 순례길을 같이 시작한 그룹들과 뭔가 단단한 감정의 끈으로 인해 결속력이 커져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였는지 팜플로나의 알베르게를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주변의 순례자들로 인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곳 팜플로나에서 만난 인연들이 카미노 순례길을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끝이 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여전히 좋은 인연이 되었다. 

헤밍웨이의 단골 카페, 이루냐


 그리고 순례길의 모든 도시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도시, 팜플로나의 마지막 시간도 페르민과 함께였다. 팜플로나는 소몰이 축제인 '산 페르민'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축제인데 3세기 주교인 성 페르민의 이름을 따서 Fiesta de San Fermin으로 불려진다. 그리고 내 친구의 이름도 그 주교와 축제와 이름은 같은 Fermin이다. 매년 여름 축제가 열리는 7월이면 놀러를 오라는 초대를 받았는데 어쩌다 보니 산 페르민 축제가 아닌 순례길로 인해 그와 재회하게 되었다. 같이 여행을 다닐 때는 동등한 관계라 잘 몰랐는데 내가 그의 고향에 방문하고 나니 그의 태도가 참 많이도 달라졌다. 나이는 내가 훨씬 누나인데도 여동생 취급하듯 알뜰살뜰 챙겨줬고, 그의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이 총출동해서 나의 안위를 책임져주었다. 내가 팜플로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보여준 호의와 함께, 그의 온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환대를 벅차게 해주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국땅에서 그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되면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여행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관계가 지속되고 또 재회를 하는 다양한 친구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이 나의 큰 재산인 것 같다. 










월요일, 순례길의 4일 차 아침.
늦잠을 자도 되는 상황이지만, 주변의 소음에 잠을 깼다. 
순례길에 필요 없는 짐은 산티아고로 보내야 했기에 우체국이 오픈되는 8시 반까지 뭉그적거리다, 짐을 붙이고는 길을 나섰다. 아침 9시가 되어서 출발했으니, 출근하는 사람들과 뒤엉켜 걸었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과일을 사고 싶어서 양복을 단정히 입은 노신사 분에게 과일 가게가 어디 있는지 길을 물었다.
한눈에 봐도 내가 순례자임을 눈치챈 그 노신사 분은 그의 서류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극구 사양을 했지만, 고집스럽게 그는 내 손에 사과를 쥐여주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난 길 위에서 많은 주민들에게 도움과 마음을 받았다. 순례자끼리 돕고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페인 주민들에게 존경과 정성을 받는 것은 언제 겪어도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오늘은 목표는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가는 약 25킬로 정도의 여정이다. 대신 언덕을 한번 넘기에 짧은 거리 치고는 쉽지만은 않다.
컨디션은 너무 좋았다. 발걸음도 가벼웠고, 걸음도 빨랐다.  수다 떠느라 길을 잘못 든 두 노신사 두 분을 큰소리로 불러 세워서는 다시 순례길로 잡아오기도 했다.
기분이 좋아 깝죽거린 탓인가, 두 시간도 못 가서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발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사실 왼발은 남보다 뼈가 하나 많은 기형 발이다. 평소에 사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스키나 인라인은 탈 수가 없다. 수술해서 뼈를 떼어낼 수도 있지만, 사는데 별문제가 없고 스키나 인라인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그냥 지냈다. 평소 트레킹을 해도 별 무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오른쪽 무릎이 안 좋은 지금 왼발에 무게중심을 가했더니, 무리가 왔나 보다. 

대충 응급처치를 했지만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며 다른 순례자와 대화를 하며 갔다. 내리쬐는 햇살에 그늘도 없는 길을 지루한 시간으로 걸었지만, 때때로 순례자와 나누는 부담 없는 대화로 신선한 공기를 얻었다.
주변의 가득한 초록의 아름다운 경치는 눈에 가득가득 담았지만, 막상 카메라로 담으면 그저  그런 초록색이라 아쉬움이 크다. 


너무나 아름다운 초록이지만, 사진에 담긴 것은 다 똑같아 보이는 초록 배경이 내 몸을 감싸 안은 카미노 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그 유명한 순례자 기념비가 서있는 '용서의 언덕'의 고지에 도착했다.
'용서의 언덕'( 'Alto del Perdon') 이란 이름의 이곳을 오르는 동안 '용서'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생각해봤다. 
나를 용서했거나 용서할  사람은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용서 못 할 사람은 떠오른다. 사실 용서 못 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 못할 상황이 있는 것이겠지만...
물론 그 상황이나 그 인간들을 용서할 생각은 없다. 용서를 너그럽게 할 만큼 난 성인군자도 아니지만, 복수나 화를 낼 생각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잊지는 않고 두고두고 곱씹을 생각이다. 헤헷..





 헐떡거리며 언덕의 끝자락을 올라가니 진아 씨가 앉아있었다. 비틀거리며 그녀 옆에 슬라이딩하듯 앉아서 그녀에게 오렌지를 건넸다.

아까 또 다른 스페인 할아버지한테 받은 오렌지를 가방에 넣지 않고 내내 손에 들고 온 것이다.
"진아 씨, 이 언니가 오렌지에 엄지손가락 찌를 힘도 없어서 그러는데, 오렌지 껍질 좀 까줄래요?"
진아 씨가 까준 오렌지를 그렇게 먹고는 기념비에서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언니, 제가 여기 와서 직접 이 기념비들을 보다니 너무 신나고 설레요"
나바라(Navarra) 카미노 연합에서 만든 이 순례 자상들은 이젠 카미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상징이 되었다. 순례길을 검색하면 나오는 대표적인 이 이미지를 실제로 방문해서 보다니  그녀의 말에 나도 기분이 상기되었다.  
"Dond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e las estrellas.”
직역을 하면 "별들의 길과 함께 바람의 길이 교차하는 곳"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이 철로 만든 순례자들의 기념비는 철이 주는 특유의 딱딱함이 아닌 따뜻함과 함께 로맨틱한 느낌까지 주었다.

언덕 위 이정표엔 서울까지 9700km라고 표기되어 있다.




 긴 휴식을 보내고는 용서의 언덕을 지나 다음 마을로 가는 내리막길은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큰 돌이 많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 스틱을 가져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꽤 고생했을 것이다. 
진아 씨와 같이 여유 있게 내려와서는 그다음 마을인 우테르가(Uterga)에서 그녀와 식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진아 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나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트린 매력적인 아가씨다.
난 그녀를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났다. 나에겐 순례길 첫날이었고, 그녀는 두 번째 날이라고 했다. 주말을 놀고 온 내가 그녀를 다시 팜플로나에서 재회한 것은 그녀의 느리게 걷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인들은 순례길을 빨리 끝내려고 한다. 한 달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먼 거리를 날아왔고 기간에 따른 비용 상승에  조급한 마음도 있다. 그런데, 보통 35일 정도 걸린다는 그 순례길을 그녀는 70일 예상으로 왔다고 했다.
자신의 몸상태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고, 또한 천천히 까미노 길은 경험하고 싶다고 기간을 확 늘려 온 것이다.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그녀의 계획에 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녀만큼 이 까미노 순례길을 제대로 느끼고 경험한 이는 없을 것이다. 천천히 걸은 만큼 더 자세히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많은 경험을 할 것이다. 




그녀와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 난 뒤 오늘의 목적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7킬로 정도 더 가야 한다. 그 사이에 마을 두 개가 더 있는데,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거기서 멈출까 하는 유혹이 넘쳐났다. 

특히나, 오바노스(Obanos) 마을에서는  그곳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벨기에 청년 바트를 만난 순간 진짜 멈추고 싶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오후의 내려찌는 햇살이 싫어서이다. 
그래도 꾹 참고 목적지를 향해 걸었고, 5시가 훨씬 지나서야 도착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피부가 홀랑 탔지만,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쫄깃쫄깃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순례자들은 오후 2~3시면 걸음을 멈추기에 오후 늦게는 순례길에 순례자들이 별로 없다. 늦장을 부린 탓에 혼자 걷게 되었지만,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그 쾌감을 느낀 이 이후로 난 호시탐탐 긴 걸음을 걸으리라 야욕을 꿈꾸었다. 
 푸엔타레이나에서는 공립 알베르게에 지내지 않고 사설 알베르게로 갔다. 쫌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 3인실에 지냈는데, 그날 밤 그 방의 순례자라고는 나와 미국인 처자뿐..  

그래서 난  둘이 호젓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그날 밤 난 여우굴 피하려다 호랑이굴에 들어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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