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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Oct 07. 2019

#4. 감정소비가 넘쳐나던 날.

세 번째 날,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수비리부터 팜플로나까지는 비교적 쉽고 완만한 길이라길래, 일부러 늦장을 부렸다.
아침을 여유 있게 먹고는 느릿느릿 움직여 8시 정도에 퇴실하였다.
어제 같이 이 알베르게에 온 마리아와 함께 길을 나서는 길, 아까 언뜻 본 빨랫줄에 그녀의 빤쮸가 걸려있는 것이 생각났다.
경쾌한 강물소리를 배경으로 해서 나도 경쾌하게 마리아에게 물었다.
"니 속옷, 아까 보니 빨랫줄에 걸려있던데, 챙겼니?"
떠나기 전 언질을 주니, 깜빡했단다. 안 가져갔으면 어쩔 뻔....



걸음이 느린 두 처자가 놀멍 쉬멍 쉬엄쉬엄 길을 나섰다. 한참 이야기하면서 가다가 잠깐 쉬고 있는데, 저 멀리 뒤에서 스테판이 오는 것이 보인다.
아주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테판아~"
반갑게 반겨주는 우리를 보더니, 스테판이 갑자기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뭔 일이야?"
"엉엉.. 방금 아내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기가 유산되었데..."
당장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무작정 길을 걸어온 그가 지금 의지할 곳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다. 

스테판은 내가 첫날 생장에서 론세스바이에스를 넘어오면서 사귄 독일 친구이다. 첫날, 힘겨운 첫길에서 헉헉거리면 만난 인연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론세스바이예스에서  순례자 식사를 할 때 내 옆 테이블에 앉았기에 다시 재회를 하였고, 식사를 끝내고는 아예 동석을 해서 좀 길게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그는 7개월 후에는 아빠가 된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임신 9주 차에 접어들었다는 부인을 두고 혼자 순례길에 오른 것에 대해 심한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가 순례길을 위해 여행을 세팅할 당시에는  부부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을 때고, 막상 임신 사실을 알아서 그가 순례길을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 그의 부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순례길을 떠나라고 응원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그러니깐, 순례길 둘째 날, 그는 그녀의 부인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제 그가 훌쩍거리고 울고 있을 때, 그의 등을 토닥거리고, 위로해준 것도 마리아와 나였다.
그리고, 오늘.  순례길에서 그의 고국 독일에서 비보를 듣고는 그 큰 덩치로 울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비빌 언덕이라고는 지난 이틀 친해진 우리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우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은 이놈의 시골길을 벗아나야 될 것 같아 가던 길을 재촉했지만, 울며 걷는 스테판과, 함께 훌쩍거리며 걷는 나, 이 두 울보 덩치를 다독거리니라 바쁜 마리아, 우리의 걸음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걸음은 느렸고, 얼마 뒤, 강아지 헨리와 헨리 아비 플로리안에게 바로 따라 잡혔다.
 플로리안의 동참으로 우리 넷은 그룹을 지여 이동하게 되었다.

같은 독일 사람이라, 모국어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플로리안, 영국에 살고 있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스페인 처자 마리아, 그리고, 스페인 전화와 인터넷을 가지고 있는 내가 그의 옆에 있다는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단은 이놈의 지긋지긋한 시골길을 벗어나야 할 것 같기에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거리가 아주 길게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길가에 작은 교회가 보여 잠시 들어갔다. 남아공에서 왔다는 신사분이 (그 사람 이름이 '닐'인 것 같다) 재건축을 하고 있다는 그 교회에서 우리는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아기를 잃은 그의 아내는 스테판에게 계속 까미노를 걸어갈 것을 재촉하였지만, 우리들의 의견은 모두 다 아내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10년을 사귀였고, 아이를 만들려고 1년을 준비했다는 그들이 당장 필요한 것은 서로의 위로와 따뜻한 체온 일 것이다. 
 일단 제일 큰 도시인 팜플로나를 가기 위해 그를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교회에 대한 설명을 닐에게서 들었지만,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11세기던가 15세기던가 그때 만들어진 이 비밀을 간직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남아공 출신의 그는 근처의 땅과 집을 샀고, 순례자들이 일하면서 지낼 수 있게 캠프를 만들 예정이라 했다. 한 순례자가 파리에서부터 6킬로짜리 야고보 상을 가지고 와서 기증했고, 지금도 교회 벽에서 하나하나 시간의 비밀을 캐고 있다는 그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뒤로하고는 난 스테판의 등등 토닥거리며 위로하기에 바빴다.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제일 가까운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빌바오에서 출발하는 독일행 비행기를 구입했고, 팜플로나에서 빌바오까지 교통편도 알아봤다. (이전에 빌바오와 팜플로나를 여행을 해봤기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여행루트가 당시에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콜택시가 도착했고, 덕분에 정신없이 그리고 제대로 된 이별 인사도 없이 스테판과 그렇게 헤어졌다. 스테판과 헤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와 제대로 된 연락처 하나 교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과연 제대로 집에 도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떠난 후, 감정의 회오리가 치기 시작했다. 카미노 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추모비들을 많이 보게 된다. 게 중 일부는 근처 주민의 무덤인것도 있지만 많은 무덤과 추모비의 주인공이 순례자인 비율이 훨씬 높다. 그 추모비를 볼 때마다 참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토록 원하는 곳에서 죽는 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축복이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지 상상이 안된다. 
또한 길을 걷다 본국에서 들려온 비보에 길 중간에 본국으로 귀국하는 이도 많다 들었다. 비보도 비보이지만 길중 간에 포기하는 심정은 어떠할지  그것도 다 헤아릴 수 없다. 

여행에서 크고 작은 만남과 이별을 계속해왔기에 이별에 익숙한 편이지만, 오늘처럼 기습적으로 이별이 다가올 줄은 몰았다. 길에서 사귄 친구와의 카미노 첫 이별이 작은 생명의 죽음과 깊은 슬픔의 동행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렇듯 카미노 초반에 격한 감정의 회오리와 여러 생각들이 휘몰아쳐서인지 이날 이후로는 나의 감정이 격한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별에 대해서는 무뎐해지기 시작했다. 





스테판은 그리 떠났지만, 남은 우리는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지만, 우리는 생채기 난 서로의 감정을 짐짓 덮어두려는 듯 이것저것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한참의 수다 끝에 플로리안과 그의 개 헨리와 헤어졌다. 플로리안의 긴 다리를 우리가 따라가기에 버거웠지만, 일부러 그가 보폭을 맞춰준 탓에 동행을 같이 해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가 서로의 보폭을 존중해주시고 다름을 인정하며 헤어지기로 했다.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플로리안과 그의 강아지 헨리와도 그렇게 헤어졌지만, 그 후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소문에 의하면 강아지 헨리가 발을 다쳐서 카미노 길에서 이탈했다고 한다.  그 후로 그의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연락처는 알고 있으니 후에 그나마 안부를 물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원래 대부분의 카미노 길은 혼자 걸으려고 했으나, 비교적 길이 쉽고 구간이 짧은 오늘의 길은 그냥 마리아와 계속 다니기로 했다. 어쩌면 스테판일 때문에 맘이 허해져서 누군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며 차츰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정리되고 그녀의 조언과 충고도 들으면서 그녀와의 만남이 어쩜 카미노가 준 선물 일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도착 직전에 그녀와 헤어졌다. 나의 숙소는 팜플로나의 도심 중심지 직전의 마을이었고 까미노 길에 있는 건물이었기에 숙소의 대문 앞에서 그녀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별을 고했다. 



팜플로나 친구인 페르민이 마련해준 숙소에 돌아와 찬물에 샤워를 하고는 (그동안 방치되어둔 빈 집이라는 생각에 온수가 안 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 보일러를 켜서 온수를 썼다) 근처의 바에 가서 페르민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 어울렸다. 그리고는 팜플로나 시내로 장소를 옮겨서 불타는 금요일 밤을 즐겼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불편했다. 
마치 재수생이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 불편한 마음으로 불금을 즐기는 심정처럼 클럽과 바를 전전해도 마음은 순례길과 동행자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순례자들과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페르민을 이끌고 다른 순례자 친구를 찾아  팜플로나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리아를 비롯한 '내 순례자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페르민의 친구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었긴 했으나, 이상하게 당시에는 순례자 친구들과의 교감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페르민도 나의 그 마음을 잘 헤아려준 덕분에 그도 자기 친구들과의 시간을 양보하고 나의 순례자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다. 내가 그의 친구들에게 마음의 벽을 둔 거와는 달리, 그는 당장 만난 내 친구들과는 허물없이 지내주는 것이 지금도 고맙고 미안하다. 
물론,  비교적 일찍 취침에 들어가는 순례자 친구들과 이별을 고한 뒤 다시 페르민의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퍼 마시고 놀긴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던 순례길 셋째 날이 저물었다. 단 하루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 기복이 오르락 내르락 해본 것이 처음이라 시간이 천년처럼 느껴진 날이다.

웃기게도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낮에 그렇게 살벌하게 걷고도  밤에 술 마시고 노는 것에 체력이 남아도는 것은 순례길 내네 지속되었으니, 체력 하나는 살벌하게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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