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 녀석 성휘 Oct 03. 2019

#3. 너는 그 길에서 많은 인생을 만나게 될 거야

두 번째 걸음,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단정하면서도 정갈한 목재식 이 층 침대가 나란히 줄지여 있는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

침대 아래층에서 잠자던 나는 나의 윗 침대에서 잠자던 남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마도 이른 출발을 위해 서두르는 것 같은데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에 반해 난 이렇게 깊은 잠에 취해 비몽사몽 정신 차리기 버거운 것을 보니 어제의 일정이 진짜 힘들었나 보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정신을 추스르고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보니, 어? 새벽 1시..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가방을 둘러없고 뛰쳐나간 남자 빼고는 다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을 자고 있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몽유병 환자인가?  아님 진짜 자다 봉창 두드리는 것인가?  아님, 술이 취해 저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잠이 깨서 한참을 몽롱하게 있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지난밤 음주와 중간에 윗 침대의 남자 때문에 설친 잠치고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자다가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 후로는 다시는 그 남자를 볼 수 없었다. 


첫날 다들 무리한 탓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긴 하지만 이럴 줄 알고 온 것이니 다들 감내하는 분위기다.

이날 론세스바이야스의 알베르게는 약 100명 정도 순례자들이  머물렸다고 하는데  그중 30명 정도와 이름을 트거나 말을 섞은 것 같다.  먼저 말을 거는 타입은 아니지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한테는 싹싹하게 말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탓에 다른 순례자들과 인사를 제법 많이 나누었다.



너는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서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될 거야. 

내가 까미노 길을 걷는다 했을 때,  먼저 다녀간  유럽 친구들이 해준 말이다. 
한국의 경험자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  가령, 챙겨갈 물품들이거나 주의해야 할 것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알려주었고 유럽 친구들은 정신적인 마음가짐이나 이상적인  사상에 대해 부분을 알려주었다.  현실적인 조언, 정신적인 조언, 이 둘 다 중요하였기에 조언해주는 주변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니 걸으면서 하루에 한 명씩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난 적어도 30명의 인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30명만 제대로 만나도 이번 까미노가 꽤 성공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리고 무슨 고해성사를 하러 온 것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순례길을 걷는 이유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후루룩 내뱉기 시작했다.

첫날은 다들 길에 집중하니라 바빴지만, 전날에 비해 비교적 난이도가 쉬워진 둘째 날부터는 길보다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하였다. 그러다 보니 듣는 이야기도 많아졌다. 알베르게를 나서는 순간부터 눈이 마주친 리투아니아 출신의 우네와 함께 걸었다. 이직 중에 까미노를 걸으러 왔다는 그녀와 긴긴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자를 사러 들린 한 가게에서 헤어졌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부딪쳤다 헤어졌다를 반복하였다.  걸음걸이의 속도도 개개인이 다 다르고, 휴식시간의 길이도 다 다른 탓에 이리저리 계속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만났고 아직은 서투른 만남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쩜 앞으로의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사람들과의 대화로 가득할 듯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수비리(Zubiri)는 강가를 바로 곁에 두고 있는 (사실, 대부분의 도시가 강을 끼고 있지만) 작고 이쁜 마을이다. 첫날의 하드 워킹을 해서 그런지, 둘째 날의 이 길은 어제에 비해 가벼운 발걸음이었고, 그래서인지 여유가 가득한 오후였다. 
대충 식사를 만들어 먹고는 강가에서 참방참방 발을 담그고 놀면서 와인을 홀짝거렸다.
강물의 온도는 얼음장처럼 차가워 겨우 5초 정도 담그는 게 고작이지만, 
숙소에서 지내지 않고 캠핑을 하는 파울로와 플로리안은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들과 강물에 샤워를 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파울로와 플로리안은 큰 덩치의  개들을 데리고 순례길에 올랐다. 기본 짐 무게에, 캠핑장비의 무게도 버거울 텐데, 거기에 개 사료까지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든든한 동반자를 데리고 다니기에 부럽기까지 하였다.
파울로와는 별로 말을 안 섞어 봐서 잘 모르겠지만, 플로리안과 그의 강아지 헨리랑은 꽤 많이 마주쳤기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막 10개월인 강아지 헨리는 얼떨결에 주인에게 끌려 나와 순례길을 걷고 있다. 아직 어리고, 어리바리한 탓에 첫눈에 봐도 천방지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 첫날 헨리도 피레네를 넘느라고 파김치가 되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했는지 아주 씩씩하게 주인을 잘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도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라 암캐 보면 흥분해서 따라가고 동네 고양이 쫒아가고 파울로의 개랑 싸우기도 한다.
"인간으로 치면 나이가 얼마가 된 거야?"라는 물음에 플로리안은 
"12~14살 정도. 한창 그 또래에 사내아이들은 '플레이보이'잡지 보면서 흥분하잖아? 어디다 쓸 줄도 모르면서 그냥 보고 흥분만 하는 것처럼, 헨리도 암캐 보면 막 흥분하고 그러는데, 그냥 이 개 저개 따라다느라 바빠"
"그래도 헨리랑 다니니 든든하지?"
"응, 사실 나 이런 캠핑여행 장기로 하는 것 일생에 처음이거든, 그런데 같이 다니니 정말 든든해"
이것저것 일을 하다, 그의 바로 직전의 직업은 바로 난민 피난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을 돕고, 정리하는 게 그의 일이었는데, 갑자기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캠핑장비를 준비하고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10개월 된 헨리와는 여행을 하면서 훈련을 시키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말하는 것도 아주 지혜롭고 현명한 플로리안은 이미 훌륭한 청년이지만, 그의 개 헨리가 긴 여행을 끝났을 때, 어찌 성장할지 아주 궁금하다.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동네 어귀에 있는 한 바에 모였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같은 순례길을 같은 시기에 걷는 인연인지라 차고 넘치는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나갔다. 그리고 오늘의 이 인연들과 끝까지 산티아고에 가자며 기운을 북돋고 격려하였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다음날부터 눈물의 이별이 생길 줄......

매거진의 이전글 #2. 첫걸음, 생각이란 생각할수록 생각나는 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