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마 Jul 12. 2023

혼자 떠나는 여행의 묘미

취약한 여행자에게 건네는 세상의 선물

제대로 된 여행을 처음 떠난 것은 20대 초,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고생스러운 여정을 함께할 친구가 없어 자연스레 혼자 다녀오게 된 것이 내 여행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다 20대 후반부터 동행이 생겼다. 친동생 또는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은, 혼자 갈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과 불편함이 있더라. 동행이 있는 여행을 해보고서야 비로소 혼자 하는 여행은 이런 점이 달랐구나? 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 아직 한 번도 혼자 여행 가보지 않았다면 꼭 알려주고 싶은 재밌는 발견이었다.



아무도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1인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모든 선택을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고 협의하거나 설득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혼자 여행을 떠난 첫날밤, 별일 없이 밥을 먹고 걷고 숙소에 돌아왔을 뿐인데도 침대에 드러누워 생각했다. 이런 자유는 평생 가져본 적 없다고.


동행자가 있을 때는 모든 선택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식당부터 숙소까지 여긴 어때? 조금만 더 있다 갈까? 등의 조율이 필요하다.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서는 더 신경쓸 게 많다. 혼자 있는 집에서도 집안일을 챙겨야 하고 약속에 일에 해야 할 일과 협의할 사람이 가득하다. 그런 교류가 모두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 여행할 때는 설득과 조율의 과정 자체가 필요 없다는 자유로움이 있다. 원한다면 오후에 가려던 목적지를 포기하고 오전에 들른 공원에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았다는 이유로 내일 이동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하루 더 도시에 머물 수도 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 없다. 누구에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혼자 여행하는 시간 동안 나에게 '해야 하는 일'이란 오직 정해진 날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 모든 순간이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한 일상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자유였다.



선택은 자유롭지만 선택지는 줄어든다

다만 자유도에 비해 선택지는 현저히 줄어든다. 예를 들면 숙소는 기본이 2인 비용이라 1인이 간다면 사실상 2배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다. 여성일 경우 호스트와 함께 묵는 에어비앤비는 사건사고가 많아서 가장 먼저 배제하는 숙소다. 1인 여행객이 가격 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묵을 수 있는 숙소는 도미토리인데 당연히 불편한 점이 많다. 즉 돈을 많이 들여 단독사용 에어비앤비나 2인 기준 호텔에 묵든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공용 도미토리에 묵는 수밖에 없다.


도시의 밤을 맘껏 즐길 수 없다는 점도 혼자 여행하는 큰 불편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여성 혼자만의 여행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이 위험은 국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성 여행객으로서 100% 안전한 나라란 이 세상에 없다.


"신이시여, 저는 모든 이와 할 수 있는 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너른 들판에서 잠을 자고, 서쪽으로 여행을 가고, 밤중에 자유로이 걷는 것, 나는 이런 삶이 가능한 세상을 원해요."
God, I want to talk to everybody I can as deeply as I can. I want to be able to sleep in an open field, to travel west, to walk freely at night...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당연히 어둑한 거리를 쏘다니고 새로운 사람들과 밤을 새워 놀기도 했다. 다행히도 매번 무사히 돌아왔지만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다녔다. 누구든 동행자가 있다면 이 불안과 위험은 현저히 낮아진다. 내가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걸 걱정할 누군가가 있냐 없냐는 천지차이다. 혼자서는 늦은 밤 말리는 사람 없이 숙소를 뛰쳐나갈 자유가 있지만,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남는다.



수많은 선의를 마주하다

혼자 떠난 여행자는 악의와 마주했을 때 더 위험한 만큼 세상의 선의를 경험할 기회도 더 많아진다. 원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그들이 베푸는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혼자일 때 여행자 스스로도 더욱 주변 환경에 관심이 많고, 주변에서 나에게 말을 걸거나 호의를 베푸는 일도 더 많다. 서로 대화하고 있는 2명보다 혼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길을 헤매는 1명의 외지인에게 말을 걸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20대 초반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자아와 경험이 말랑한 상태로 모든 걸 흡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어지간히 어리숙해 보이고 못미더워 보였을 것이다. 덕분에 매일 숙소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동행하고 도움을 받았다. 동행 중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고 노인도 있었으며 그들과 함께 한 위험했던 순간과 기적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어렸고 미숙했던 나를 세상이 등 받쳐주고 도와주며 여행을 인도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혼자 떠나는 것을 즐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생에 한 번쯤은, 해외가 아니더라도 혼자 하는 여행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 피할 데 없이 있는 그대로 낯선 주변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된다. 내가 20대에 홀로 떠났던 유럽에서 마주한 세상의 선의를 아직까지도 믿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짧게 머물러도 괜찮은 도시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