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주섬주섬 비판텐을 챙겨 화장실에 가는 이유
평소 타투에 대한 질문을 꽤 받는 편이다. '이것도 타투예요?'부터 '대체 무슨 뜻이에요?' 등 초면에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꽤 있다. 내 타투가 낙서나 물감모양 등 흔치 않은 형태이기도 하고 여성과 직장인의 범주 안에서는 타투가 많은 편이기 때문일 터. 타투를 하고 회사를 다녀야 하는 모든 이와, 사회생활이 걱정되어 타투를 꺼리는 이들에게 감히 타투 예찬론을 펼쳐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타투를 아예 안 한 사람은 많아도 딱 하나만 하고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타투가 한 개만 있는 사람 중 99%가 두 번째 타투를 어디에 할지 고민 중이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이건 꽤 중독성이 있다.
타투, 왜 해요?
방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포스터나 사진을 빼곡히 붙여두고 흡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무언가를 아무리 좋아해도 벽은 깨끗하게 유지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타투를 하는 사람들은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 기억하고 싶은 것을 가장 오래 붙여둘 수 있는 벽을 찾다 보니 피부가 종착지가 된 것이다. 타투를 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을 자주 들여다보고 싶고, 좋아했던 것을 내 몸에 간직하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투 하나하나가 오직 나에게만 그려주는 작품인 점도 좋았다.
벽보다는 몸에 새길 때 당연히 더 고심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인지를 깊이 생각한다. 다만 고민에 시간을 오래 들인다기보다는 마음속에 있던 것을 어느 날 꺼내는 것에 더 가깝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신화 속 인물, 한참 기억에 맴도는 장면, 잊지 않아야 할 기억 같은 것들에 어울리는 도안이나 타투이스트를 발견하면 타투를 마음먹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후회한 적은, 한 번도.
타투를 후회한 적 없냐는 질문은, 타투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다. 아마도 타투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가 후회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 번도 타투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데, 다만 시간이 지나며 색을 조금 진하게 했으면, 선이 조금 얇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업들은 있다. 커버업 타투라는 게 있어서 기존 타투를 가리거나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강해지면 커버업으로 새롭게 바꿔볼 계획이다. 아직까지는 없애버리고 싶은 정도까지 아쉬운 타투는 없었다.
어떤 위치의 타투든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지나면 내 몸의 일부로 인식하게 되고, 후회라는 감정이 생기기엔 이 타투와 너무 익숙해진다. 남들이 보기엔 촌스러워 보일 수 있어도 나에겐 그 타투가 내 손톱처럼 익숙한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손톱을 보고 '큐티클이 좀 덜 생겼으면' 할 수는 있어도 '손톱이 없었으면' 하지는 않듯, '이 타투를 하지 말걸'이란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그래도 손톱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진짜 좋아하는 것을 새기려 노력하고, 좋아하는 것의 흔적은 좀 흐릿해져도 여전히 좋더라.
현실적인 문제, 통증과 금액
타투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들고, 통증은 생각보단 참을만하다. 인스타그램에 할인 이벤트로 타투를 해주겠다는 홍보도 꽤 많은 걸로 아는데 일단 나는 절대 타투만큼은 돈으로 타협하지 않는 편이다. 타투이스트의 이전 작업이 내 맘에 드는지, 원하는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작업자인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팔로워와 작업 수를 잘 따져서 최소 1~3만 팔로워에 완전히 치유된 작업물 포함하여 작업 히스토리가 100개 이상인 사람을 찾으면, 10cm 정도의 도안은 정말 러프하게 말하자면 30만 원에서 50만 원가량이다. 사이즈와 도안의 복잡함, 디테일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같은 도안을 더 싸게 해 줄 사람을 찾는다면 분명 찾을 수 있겠지만 타투는 영원히 내 몸에 새겨지는 액세서리이기에 그걸 싼 값으로 대체해 볼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모든 타투를 타투이스트에게 도안부터 맡기기 때문에 작업자의 스킬뿐 아니라 감도도 아주 중요하다. 도안을 맡겨서 하는 타투는 결국 아티스트에게 유일한 작품을 하나 의뢰해서 그걸 내 몸에 받아가는 작업이다. 싼 아티스트를 찾는 것보다 맘에 드는 아티스트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렵다.
통증은 부위마다 다른데 뼈에 가까울수록, 피부가 얇을수록 더 아프다. 팔도 바깥쪽은 참을 만 한데 안쪽의 여린 살은 꽤 아프다. 바늘로 살을 긁는 방식이기 때문에 칼로 피부의 얇은 면을 긁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진피층을 긁는 것이기에 깊이 찌르는 주사보다는 덜 아프지만 그보다 훨씬 길게 아프다. 작업은 최소 2-3시간, 길게는 5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타투 자체도 아프지만 몸의 어떤 부위를 그림 그리기 쉽게 내어준 채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 5시간씩 팔을 꺾어서 몸 뒤쪽을 내어주고 나면 다음날 온몸이 쑤시고 몸살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아픈 것보다 술 못 마시는 게 더 힘들어요
타투를 한 뒤 최소 1주, 최대 3주~1달 동안의 관리가 발색을 좌우한다. 3일간은 물도 닿지 않는 게 좋고, 3일 후에도 샤워용품은 최대한 닿지 않게 해서 1주 뒤부터 샤워를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동안은 부위별로 바디샤워를 묻히는 쪼잔한 스타일로 샤워를 해야 한다. 타투 부위가 뜨거워지는 것이 염증의 지름길이라 몸은 계속 시원하게 유지해야 하고, 그 부위가 마찰되지 않도록 옷도 신경 써서 입어야 한다. 자외선은 절대 피해야 하는데 선크림은 바를 수 없다. 즉 마찰감이 없는 시원한 셔츠 같은 걸 입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수영, 운동은 모두 3주 뒤부터 가능하다. 무엇보다 금주를 해야 하는데 사실 나는 라인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형태의 타투를 할 때는 타투 당일부터 그냥 술을 마셨고 별 일이 없었다. 근데 색을 채우는 넓은 부위의 타투를 하기 시작하니 술을 마시거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염증이 생기더라. 타투 부위가 가렵고 올록볼록해지는 걸 겪고 나니 겁이 덜컥 났다. 다행히 지금은 잘 아물었고, 그 후 최소 1주일은 금주 & 3주간 발효주는 마시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공식적인 지침은 타투 전 1주 & 타투 후 3주간 금주이니 가능하다면 지키시길..
그래서 타투를 차라리 한 번에 2개씩 받는다. 술도 못 마시고 샤워도 조심해야 하니 아예 그 기간을 한 번에 몰아 버리는 것. 매일 연고를 치덕치덕 여기저기 발라야 하지만 한 번에 귀찮은 것이 낫더라.
가장 현실적인 질문, 사회생활은 가능할까?
내 타투는 팔에 집중되어 있는데 손목부터 어깨까지 양쪽 팔에 이것저것 잡다하게 있다. 겨울엔 안보이겠지만 여름엔 당연히 눈에 띄는 부위이고, 난 더위를 꽤 타기 때문에 슬리브리스를 즐겨 입어서 여름엔 타투가 거의 다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투와 함께 한 나의 사회생활 10년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 직업은 에디터, 패션 MD였기에 포스트말론 정도가 아니라면 타투가 별 흠이 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깨닫지 못하는 새에 꼰대 같은 누군가에게 타투 때문에 양아치로 패싱 당했을 수도 있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개인적인 사이에서도 누군가에게는 타투로 인해 더 쉬워 보일 수도, 또는 더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런 반응을 내가 알아챌 정도로 겪은 적은 없다.
나는 사람을 타투 때문에 부정적으로 판단할 사람들과는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었고 그래도 지장 없는 세계에서만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만약 앞으로 언젠가는 타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평가받아야 하고 그런 사회에 들어갈 예정이 있다면, 또는 지금 사는 세계가 그런 부류와 함께라면 타투는 보류하는 게 맞다. 굳이 이 ‘재미’를 위해 장래를 사활에 걸진 말자.
다만, 부위를 잘 골라보자
타투를 받았던 타투이스트중 한 명에게, 자신이 온몸에 타투를 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시던 부모님이 손등에 타투를 하고 오니 갑자기 너무나 속상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옷과 상관없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부위인 얼굴, 목, 손등은 타투이스트들도 조심스러워하는 곳이다. 타투를 감춰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곳에 너무나 떡하니 타투가 있다는 것은 조금 더 힘든 길일 수 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곳에 하는 타투도 꽤 재밌다. 골반쪽에 타투가 하나 있는데 타투 시술받고 관리하는 2주간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서 타투 연고인 ‘비판텐’을 바를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관리가 끝난 후에는 이 타투를 옷 갈아입을 때만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은밀한 즐거움을 옷 안에 숨겨둔 기분이 든다. 등이나 옆구리처럼 나 스스로도 보기 힘든 곳에 타투를 하는 것도 이런 재미겠거니 싶었다.
손목, 발목, 손가락, 귀 같은 부위는 살성 때문에 타투가 쉽게 지워지기도 한다. 특히 귀는 타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고,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 귀에 타투를 해주는 타투이스트를 경계하라는 말도 들었다.
팔의 넓은 부분들은 타투이스트에게는 완벽한 도화지 같은 부위다. 이 부분에 할 타투는 가장 고민해서 잘하는 타투이스트에게 맡기는 게 좋다. 어떤 모양이나 사이즈도 완전하게 구현할 수 있고, 왜곡 없이 아름답게, 남에게도 나에게도 잘 보이는 부위이기 때문. 팔의 하박 한가운데에 작은 타투를 새기려고 했더니 타투이스트가 여긴 너무 좋은 도화지니 비워두고 조금 옆에 새기자고 하더라. 몸의 여백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게 해주고 싶은 타투이스트의 마음이 귀엽고 고마웠었다.
한번 타투를 받고 나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남은 모든 몸의 피부가 여백처럼 보이는 것.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가능성 넘치는 도화지다. 내 몸은 주어진 것이지만 그걸 채우는 방식은 오롯한 내 몫이다. 후회 없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조곤조곤 몸을 채우는 건 꽤 기획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색과 결로 채울지 고민하는 과정은 그래서 어렵고도 즐겁다.
인생의 작은 즐거움으로 타투를 즐기고 있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타투를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심해서 선택할 필요는 있지만 흥미가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처음 타투를 했을 때 너무 재밌고 뿌듯해서 엄마 아빠도 받아보라며 열심히 영업했다. 영업은 결국 실패하고 등짝을 맞았지만, 그만큼 첫 타투부터 지금까지 모든 타투의 경험은 새롭고 강렬했다.
타투를 결정하고 타투이스트를 고르고 도안을 수정하고 위치를 고민하는 과정은 언제나 설렘이 함께한다. 타투가 아물며 피부에 스며드는 과정에는 감각적인 즐거움도 있다. 이 세상에 이토록 몸에 새길 예쁜 것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며, 주변 사람들이 타투라는 즐거움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무엇을 새길 지 생각하며 사랑하는 것을 더 오래 곱씹어봤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몸에 어떻게 새겼는지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