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마 Dec 27. 2020

크리스마스이브에 자가격리당한 1인 가구

나 홀로 코로나 서바이벌

크리스마스이브, 어떻게 하면 1분의 지체도 없이 칼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업무를 보고 있는데 대표님의 호출이 왔다.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오라며. 오늘 매출이 안 나와서 그런가 싶어 조심스레 들어갔는데 대표님은 누군가와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묘한 표정으로 날 보길래 ‘대체 뭐지?’ 싶었는데 아직 통화 중인 대표님이 메모장에 적어주는 한 문장.


‘A업체 담당자 확진!’


순간 오늘 잡았던 모든 크리스마스 계획이 뾰로롱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A업체는 내가 이틀 전에 사무실에서 업무 미팅을 했던 곳이었다.

대표님과 함께.


크리스마스이브, 대망의 자가격리 1일째


대표님의 통화는 보건소에서 밀접접촉자임을 알리는 전화였다. A업체 담당자가 확진이 되면서 동선이 공개됐고, 미팅룸에서 1시간 이상 대면 미팅을 한 나와 대표님이 곧바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다. 그 길로 짐을 싸서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얼덜떨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가격리가 아닐 거야’라는 희망 아닌 희망이 있었다. 미팅은 1미터 너비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고, 우리 모두 마스크를 썼고, 음료도 마시지 않았고, 악수도 하지 않았다. 그 미팅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옮을 가능성은 없다고 느껴졌고, 물론 안전이 가장 최우선이지만 제발 자가격리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인 데다가 사흘 뒤는 내 생일이기도 했으므로. 물론 철없는 생각인 걸 알지만 이런 날들을 혼자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밀접접촉자인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지 여부는 ‘역학조사관’이 현장을 확인 후 최종 결정이 난다. 조사관의 방문과 최종 결정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에 코로나 검사를 한 뒤에도 검사 결과와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이틀간은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결국 크리스마스날까지 이틀을 꼬박 집에 혼자 틀어박혀서 코로나에 대해 온갖 정보를 찾았다. 크리스마스라 해도 어차피 소소하게 남자 친구와 집에서 요리해먹고 와인이나 따려던 계획이었지만, 그마저 무산되고 절대 자의가 아닌 자가격리를 하고 있자니 속상해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오전부터 맥주를 퍼마시고 낮잠이나 자다가 검사 결과가 나왔는지 문자를 뒤져보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이틀 뒤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하지만 미팅룸에는 cctv도 없고, 구두 진술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역학조사관의 판단은 미팅 참석자 모두 2주간의 자가격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속마음은 제발 아니었길 바랐지만, 이성적으로는 사실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1일 확진자가 1200명에 이른 지금, 가장 안전지향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그냥 이 상황이, 하필 크리스마스와 생일과 연말과 신년까지 이어지는 어쩜 이런 타이밍에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는지 믿기지 않을 뿐. 자가 격리자들이 우울증을 겪기 쉽다고 하던데 첫날부터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 급격히 우울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