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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Dec 27. 2020

1인 가구 VS 3인 가족의 자가격리

코로나 대신 좀비 세상에 혼자 살아남았다고 믿기로

코로나 확진자와의 밀접 접촉으로 인해 자가격리가 확정되었을 때, 혼자 사는 평범한 직장인 VS 가족이 함께 사는 회사 임원의 걱정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혼자 사는 30대 직장 여성의 걱정

1. 자가격리 기간 동안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지? : 못 버린다. 2주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모아두어야 함.

2. 배달 음식을 받는 건 불법이 아닌가? : 비대면으로 받으면 문제없음.

3. 그동안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려면 돈도 꽤 들겠다 : 맞다, 꽤 든다. 요리 안 하는 사람으로서 배달로만 밥 먹었으면 가사 탕진했을 듯.

4. 새로 산 코트는 개시 못하겠군. : ㅇㅇ 아직 개시 못함.

5. 신발 수선 맡겼는데 너무 오래 찾으러 안 가서 분실되면 어쩌지? : 수선집 아저씨가 부디 코로나 상황을 이해하고 잘 간직해주시길 기원 중.

6.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기절하면 어쩌지? : 아직 떨고 있는 중.

5. 갑자기 이빨이 빠지면? 응급실은 가도 되나? : 이빨 안 빠지게 조심하는 중.


가족과 함께 사는 회사 임원의 걱정

1.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할 텐데 어떻게 이해시키지?

2. 정원까지는 집이니까 나가도 될까?

3. 어떤 방을 내가 써야 하지?

4. 애들이 학교 가서 ‘엄마 코로나야’라고 말하지 말아야 할 텐데.


가능하다면 임원분의 걱정거리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적고 싶지만, 차마 묻지 못하니 내가 찾아낸 나의 결론만 적었다. 이 대조적인 걱정거리는 내가 이 포스트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서로의 걱정이 너무나 다르다는 게 재밌었기 때문. ‘격리’라는 처우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상황이 아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있기 마련이고, 누구든 불안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인 가구에게는 격리란 차원이 다른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보다 1인 가구일 경우 자가격리는 훨씬 효율적이다. 화장실, 수건, 그릇 사용을 걱정할 필요 없이 오직 문만 걸어 잠그면 된다. 그만큼 철저히 혼자가 되기 쉽다는 뜻이다. 자가격리 사나흘 째가 되니 ‘내가 혼자 죽어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불안이 극에 다다를 정도였다. 친구와 계속 카톡 하고 가족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당장 평일에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없으니 내가 머리를 부딪혀 쓰러져 있어도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홀로 사는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먹고 산다. 당신의 생사를 궁금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당장 숨을 쉬고 있다 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당신이 혼자 산다면. 1인 가구인으로서의 이 근본적인 불안은 자가격리라는 상황에서 극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법과 지역사회의 책임감을 짊어진 채 ‘절대 혼자 있을 것’을 명령받은 상황이니까. 이성적으로는 비약이라는 걸 알지만 감정적으로는, 마치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 내내 우울과 불안을 잔뜩 껴안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대충 끼니를 때우며 세계 종말 영화를 보다가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약간...

좀비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 같은데?


집 밖에는 온통 좀비가 득실거리고 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처럼 종말이 다가온 세상에서 오직 내 집만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간신히 홀로 살아남은 나는 스스로와 이 집을 최대한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고 생각하니 우습고도 드라마틱하게 불안감이 사라졌다. 대신 왠지 모를 사명감(살아남아야 한다)과 책임감(집에 있는 식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이 차오르면서 어이없게도, 용기가 났다.


세상의 모든 자가 격리자들이여,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런 구호라도 라디오로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자가격리 해제 D-10을 보냈다. 터무니없도록 의미심장한 사명감에 찬, 좀비물 마니아 자가 격리자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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