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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Jan 10. 2020

혼자 산지 13년, 침대를 바꿉니다

비혼주의자의 인테리어

스무 살 대학생부터 서른셋 직장인까지, 눈 떠보니 어느새 13년을 혼자 살았다. 서울에서 세 곳의 집을 옮겨 다녔고 원룸에서 10년, 투룸에서 3년째 살고 있다.

주변의 자취하는 친구들과 내가 가장 달랐던 점은, 자취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인테리어를 가능한 최대치까지 해버린다는 점이었다. 갖고 싶은 건 바로 가져야 하는 성미 때문이겠지만 비혼주의도 원인 중 하나였다. 대부분 집을 갖고 인테리어를 하는 시기를 '결혼 후'로 잡는다지만 나에게 그건 오지 않을 미래였기 때문이다. 돈 되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언젠가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일찍이 접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원하는 공간에서 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나의 집'을 기다릴 바엔 지금 살고 있는 내 집을 꾸미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했다, 인테리어. 그렇다고 해서 금손 블로거들처럼 벽지를 직접 바르고 타일 작업을 하는 정도는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인테리어는 좀 더 예쁜 그릇을 사고, 좋은 수건을 컬러별로 구비하고, 방바닥에 앉아야 하는 좌식 식탁 대신 원목 테이블을 사는 수준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은 아니지만 집에 들어가면 내 취향이 가득하다고 느껴질 정도. 다이소 표 자취생과 인테리어 파워블로거 사이의 어느 애매한 지점에 내가 있었다.

7년 가까이 사용한 싱글 침대를 오늘 퀸 침대로 바꾸며, 13년 동안 집에 쏟아부은 소비에 대해 생각했다. '남의 집'을 가득 메운 예쁜 물건들에 대해, 그 잡다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들인 돈에 대해, 모아둔 돈은 없고 내 집도 없이 오직 물건만 남은 직장생활 7년 차에 대해. 뿌리내릴 곳은 없이 이삿짐과 함께 타지를 부유하는 듯한 불안정함에 대해.

동시에 구석구석 취향이 녹아있는 나만의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가구를 좀 더 편하게 쓰기 위해 부품을 직접 사서 못질한 추억에 대해, 한 끗 차이의 나무 색감을 고르느라 고생하며 찾아낸 원목 식탁에 대해, 깔맞춤을 위해 직접 페인트칠 한 쓰레기통에 대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그 공간을 완성하는 것을 미래로 유보하지  않았던 내 선택에 대해, 13년 동안 집에서 느껴온 특별한 안정감에 대해.

'집'에 대한 잡지를 만들며 만난 인터뷰이는 '꼭 사야(buying) 내 집인 건 아니다,  지금 살고(living) 있는 집이 내 집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던 20대에는 집을 '산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30대인 지금의 느낌은 또 조금 다르다.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살아도 결국 전셋집, 월세집은 주인이 떠나라면 나가야 하는 집이다. 집주인과의 트러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집을 온전히 내 공간이라고 인식할 수 있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있다면 내 집'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13년을 살고 있다. 가장 편안해야 할 공간을 '언젠가 갖게 될 진짜 내 집을 위한 일시적인 상태'로 두고 싶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내년에 당장 계약이 만료돼 이사해야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나는 퀸 침대를 샀다. 이제 잠들기 전 침대에서 한 바퀴 더 뒹굴거릴 수 있고 덩치 큰 남자친구가 와도 더 이상 이불을 따로 깔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의 행복이 침대 비용의 몇 배 크기로 내 안 어딘가에 적립되리라 믿는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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