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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Jan 28. 2020

여자의 명절

인생의 단 하루도 불평등할 의무는 없다

명절에 엄마와 크게 싸웠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다가 일어난 싸움이었다. 아빠는 말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엄마는 결국 눈물바람. 결국 내 입에서 '아이고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도 한참 분위기가 냉랭했다.


만약 누군가 우리의 옆자리에서 싸움 내용을 들었다면 의아했을 것이다. 서른 넘은 딸에게 엄마가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라고 하면서 시작된 싸움이니까. 대부분 반대의 경우 아닌가?


대한민국 여자라면 누구든 직간접적으로 명절의 괴로움을 경험한다. 명절이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성별에 대한 불평등이 가장 가시적이고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노동량의 차이, 시가와 처가 방문의 순서와 체류 시간 차이, 친척들에게서 연휴 내내 서라운드로 들어야 하는 성차별적 언행 등 손에 꼽기도 어려운 다양한 차별적 상황이 존재한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겪은 성차별 역시 명절에 일어났다.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남자들은 먼저 테이블에서 여자들이 차린 밥상을 받고, 여자는 그 밥상을 다 차린 뒤에 좌상에 모여 남은 음식을 먹었다. 그에 대해 몇 번이고 어른들에게 물었지만 '어른들이 먼저 먹고 아이들이 뒤에 먹는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남자 테이블에는 초등학생인 사촌 오빠가 끼어있었다. 여자 좌상에는 그 오빠보다도 세 살이 많은 그 집의 맏딸이 엄마들과 앉았다. 당연하게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남녀로 나뉜 밥상이라는 것을 몇 년이 흐르고서야 알았다. 깨닫는데 그토록 시간이 걸린 것은 성별로 밥상을 나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어린 나이에도 분노가 치밀었다. 밥상을 차린 것은 엄마인데 엄마의 밥상이 너무 초라했다.


여자들 좌상에 앉지 않기 위해 밥을 안 먹기 시작했고 수년 뒤에는 할머니 집 자체에 발길을 끊었다. 지금은 왕래를 하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할머니 댁에 가던 시기에도 나는 명절 음식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엄마를 포함한 오직 며느리들만 부엌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딸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기 위한 엄마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겪은 명절 성차별은 사실 심한 정도가 아니다. 어린 나이부터 명절 음식을 도와야 해야 했던 사람도 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그런 명절을 지내고 있는 이도 있다. 부당함만 느끼고 실제 노동을 할 필요는 없었던 나 정도면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걸 운에 맡겨야 하는 사회에 화가 난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내가 어떤 명절 분위기에 놓일 것인가는 다시 운에 맡겨진다. 내 가족이 아닌 남편 가족의 성향에 따라 명절 풍경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TV보는 남자들을 앞에 두고 기름 냄새 맡으며 전을 부쳐야 할 수도 있고, 남편 아침은 잘 차려주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내 가족보다도 더 어렵고 조심스러울 시가 가족 앞에서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언제나 불투명하다.


이것이 엄마와 내가 카페에서 싸운 이유였다. 나는 결혼을 하면 명절에 겪을 불평등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을 견딜 자신도 없고, 나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밀어 넣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가서 다들 놀고 있는데 나만 며느리란 이유 하나로 음식 만들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그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안된다고.

엄마는 그 하루, 일 년에 며칠 그러는 게 대체 무슨 대수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치도 희생할 마음 없는 너 같은 사람은 당연히 결혼해선 안된다고. 어른들 있는데 그럼 며느리가 노느냐고, 당연히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면 결혼하지 말고 평생 혼자 살라고 했다. 너 같은 여자와 결혼할 남자는 절대 없다고.


결혼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는데, 난 비혼주의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결혼하지 마'가 너무 화가 났다. '아니 나 결혼할 건데? 그런 상황 안 만들 남자 만날 건데?' 하고 되받아치다가 싸움이 났다. 비혼주의자 딸년은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 그 엄마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참 이상한 싸움이었다.


오직 명절 때문에 결혼을 안 하려는 건 아니지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명절은 단순히 그 하루의 힘듦을 넘어서 결혼 후에 겪어야 하는 모든 사회적 불평등과 가부장제의 상징이다. 그게 뭐 대수냐, 명절 며칠만 꾹 참고 버틴 후에 남편에게 큰 선물이라도 받으면 된다는 사람도 있다. 요리를 원래 좋아해서 명절에 자신만 일하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30대 여성에게 실제로 들은 얘기다).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단 하루도 나 스스로를 '여자이기에 집안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놓아둘 마음이 없다. 우리에겐 365일 24시간 불평등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시대가 많이 바뀌고는 있다. 시댁과 처가, 도련님 아가씨와 처제 처형처럼 차별적인 단어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 당연시되는 명절 노동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나 기껍고도 뿌듯한 일이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불평등이 줄어들고 있다 한들 내가 겪으면 100% 확률이 된다. 이미 여러 번 겪었고, 꾸준히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겪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불평등과 평생 싸우며 살아야 할 것이다.

불평등해도 되는 날 같은 것은 없다. 나에겐 일 년의 며칠, 명절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단 하루라도 여성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권리가, 너무나도 당연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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