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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Feb 19. 2020

33살 J의 곱슬머리와 목도리

나의 오랜 친구

J가 생각하는 가장 그녀 다운 옷


검은색 기모 후드 원피스에 따뜻한 검은색 레깅스

빨간 니트 목도리

볼이 넓고 편한 운동화는 검정과 빨강이 섞인 러닝화

검은색 메신저 가방

양말은 반드시 귀여운 것으로! 윙크하는 고양이나 곰돌이가 그려진 양말




추위를 많이 타고 옷은 무조건 편한 게 최고라는 J. 실리주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외모를 꾸미는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이 있습니다. 학생 때부터 머리를 스포츠 헤어로 바싹 밀기도 하는 유별난 친구였죠. 저와는 18년 지기 친구이고 그녀의 스포츠 헤어 학생 시절에 저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로 함께했습니다. 여학생 두 명이 꼭 붙어 다니는데 한 명은 반항아 같은 반삭, 또 한 명은 교칙 규정보다 2배는 더 긴 머리니 선생님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콤비였겠죠?


지독한 곱슬인 J의 머리카락은 길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급격한 커브를 고집합니다. 정말 그토록 자기주장이 강한 곱슬은 여태껏 본 적이 없어요. 특히 눈썹 바로 위에서 S자를 그리는 곱슬머리에 대해 J는 언제나 투덜대곤 해요. 매직도 몇 번 해봤지만 새 머리가 자라는 즉시 1자 매직 머리 위에 S자가 조금씩 생겨나곤 합니다. 숱도 어찌나 많은지 웬만한 고무줄로는 감당이 안될 정도예요. 아주 생명력 넘치고 강력한 곱슬머리 유전자입니다.


J는 물놀이를 저만큼 좋아하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해요. 오직 수영을 하기 위해 여름이 되면 호캉스를 가고 한강수영장을 들락거립니다. 선탠이나 셀카에 대한 욕심 없이 오직 수영, 찬란한 여름 햇살 아래에서의 기분 좋은 수영을 즐깁니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함께였고 인내심이 없어 몇 달 만에 그만둔 저와 달리 J는 꾸준히 수영을 배워서 저보다 훨씬 전에 수영을 마스터했어요. 여름에 수영 가자고 하면 J는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름을 좋아하는 만큼 추위를 많이 타서 봄가을부터 겨우내 목에 무언가를 두르고 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빨강 검정 체크무늬의 후드 달린 목도리를 매일 둘렀는데 저는 펑크스타일 사오정이라고 놀렸어요. 딱 치키차카초코초에 나오는 사오정의 머리쓰개랑 똑같이 생겼거든요. 제가 엉망으로 떠 준 파란색 니트 목도리도 J는 한참 잘 두르고 다녔죠.


돈을 쓰는 것보다는 모으는 것을 즐거워하고 어떤 물건이든 심미적인 면보다는 실용적인 면을 중시해서 구입합니다. 수영복만 해도 해마다 새 걸 사는 저와 달리 J는 수영복이 찢어지지 않는 한 바꾸지 않아요. 우리는 거의 정반대의 소비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가 산 물건을 서로 이해할 수 없어해요. 제가 사는 오직 예쁘기만 한 장식물을 J는 타박하고, J가 산 인체공학적 못생긴 키보드를 저는 못마땅해합니다. 하지만 실용적인 J 덕분에 인테리어는 예쁜 것뿐 아니라 수납도 중요하다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고, 각종 실용적인 생활용품-정육각형 콘센트나 실리콘 빨대-도 얻어 쓰고 있습니다.


J는 똑똑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렴풋한 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저와 달리 J는 '난 모르는데 그게 뭐야'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도 언제든 꺼내어 함께 조립해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일상과 사상을 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단 하나, 쇼핑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새로운 뭔가를 샀다는 걸 들키면 벌써 눈을 가늘게 뜨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가장 J 다운 옷

어깨가 드러나는 튜브탑 썬드레스, 밝은 파란색이고 무릎까지 오는 길이

검은색 보잉 선글라스

어깨까지 오는 (천연) 곱슬머리

밑창이 러닝화 아웃솔처럼 생기고 넓은 스트랩이 있는 스포티 샌들

쉽게 젖지 않는 도톰한 재질에 큼직한 사이즈의 캔버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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