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땐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 전 술 모임에서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대형 테이블의 내 맞은편에 오늘 처음 만난 남녀가 앉았는데 시간은 새벽 1시, 이미 마신 술은 와인부터 소주까지 다양하게 섭렵한 상황. 10명 남짓했던 모임에는 부부, 연인, 솔로 등이 섞여있었고 이야기는 중구난방이었다. ‘연애하고 싶다’ ‘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니’ ‘전에 먹었던 그 와인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오늘 ㅇㅇ이를 봤는데 살이 많이 쪘더라’ ‘결혼하니 이상하게 살이 찐다’ ‘넌 안경만 벗고 머리만 좀 바꾸면 금방 연애할 수 있는데 왜 그러고 다니니’ 등등 그야말로 온갖 대화가 난무하는 초토화 술자리였다.
나도 술을 좀 마신 상태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얕고 얼큰한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의 남녀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남자는 여자의 폰에 뭔가를 깔아주기도 하고, 어깨를 감싸며 뭔가를 가르쳐주고, 둘만의 작은 짠을 하기도 했다. 다들 각자의 이야기와 술에 심취해있어서 그 둘을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지만 나는 눈을 돌리기엔 너무나도 맞은편이었다. 한 시간 남짓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고, 나는 점점 먹던 술이 깨는 것을 느꼈다. 왜냐면,
그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었거든.
나는 그 여자친구와 술도 한번 먹었고, 남자는 내 애인의 꽤 친한 친구다. 게다가 그 남자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술자리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 그냥 친절한 거겠지 애써 생각했으나,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저건, 누가 봐도 플러팅이다! 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냅다 남자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놈이 지금 대체 뭐하는 짓이야? 싶기도 하고, 대체 상대 여자를 어떻게 보고?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플러팅의 시작 시점이 여자가 ‘지금 연애를 안 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낸 직후라는 것도 떠올랐다. 내가 팔짱을 끼고 노려보는 동안 둘 사이로 누군가 남자에게, ‘너 여자친구는 오늘 왜 안 왔어?’라고 눈치 없이 물었고 순간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 후에는 너무나 진부하게 여자가 남자 뺨까지 때리는 해프닝이 있었고 남자는 다음날 이 모든 걸 기억조차 하지 못하며 웃긴 사건으로 지나갔다. 나에게만 이 일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 ‘바람을 피우려던’ 상황이, 이렇게나 쉽고 평범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웃기기도 놀랍기도 했다.
모든 것은 상황이 아니라 대처에 달렸다. 상황을 통제한다고 해서 이렇게나 은밀하고 흔하게 일어나는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연인 간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결국 그 사람이라서 생긴 일이다. 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 만나지 않았다면, 수많은 가정을 해봤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빙 돌아서도 바람피울 사람은 피고야 만다는 진리를, 이상하게 깨달은 술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