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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을 보고

우리가 지나가야 할 갈등의 시간을 견디며

by 하마

넷플릭스에서 요즘 한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는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봤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면 전단지라도 만들어 뿌리고 싶을 정도로 추천하고 싶었던 작품. 4편밖에 안 되지만, 다 보고 나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폭풍 같은 성별 갈등의 사회에서 일찌감치 빨간 약을 먹은 30대 여성으로서 이 작품을 보고 느꼈던 첫 번째 감상은 두려움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이자 13살짜리 동급생 '케이티'를 살해한 가해자 '제이미'의 논리는 낯설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이 들어본 주변인의 말이고, 뉴스에서 본 사건의 전말이다. '왜 안 만나 주냐'며 전 애인을 살해하는 수많은 사건, 여성을 골라 찌르는데 ‘묻지마 살해’라고 부르는 언론, 그런데도 본인이 '역차별'을 겪었다고 말하는 남성은 30대인 지금도 주변에 유구하다.


나는 1~4화 중 3화의 상담가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상담사가 제이미와 겪는 상황은, 여성이라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안다. 제이미가 특정 대화를 불편해하는 제스처, 폭발하는 부분, 본인의 권력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남자 경찰과 변호사 앞에서는 경직되고 순종적이었던 제이미는 여성 상담사 앞에서 놀랍도록 자유롭고 공격적으로 변화한다. 상담사는, 나름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이미가 성인 대 미성년자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적 상하관계에서 자신을 아래로 보는 것에 놀란다. 에피소드 중 제이미는 총 두 번 폭발하는데, 상담사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한 번,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한 번이었다. 그 폭발의 장면이 낯설지 않아서 더더욱 마음이 내려앉았다. 우리의 세상은 정도의 차이일 뿐 ‘제이미’로 가득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어떤 인간들이 걸어 들어오고 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제이미의 아버지가 사건 이후 생경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표정이 마치 내 얼굴같았다. 세상이 어디까지 간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하는 표정 말이다.


꽤 많은 한국 시청자는 케이티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 경우 비난의 화살이 대부분 여성에게 돌아갔기 때문. 하지만 내가 볼 때 케이티에게는 잘못이 없다. 오히려 나는 피해자가 케이티처럼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이라면 케이티는 자살할 것이다. 대부분 우리의 사건은 그렇게 끝난다. 케이티가 그랬듯 가해자를 비웃으며 지나가는게 아니라 피해자가 스스로를 던지며 끝이 난다. 제발 여성들이 한국에서처럼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케이티처럼 죽임을 당하지도 않고 끝났으면 좋겠다. 물론 케이티는 분명 사진 사건으로 상처받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미 따위는 비웃을 수 있는 자존감이 남아 있었다. 소년의 시간을 살아남으려면, 모든 여자아이들은 케이티 정도는 강하게 커야 한다.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어야 한다.

케이티마저 결국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사회는, 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사회는 더더욱, 제이미와 케이티의 사회다. 살아남으려는 케이티와 분노하는 제이미, 그 둘 외에는 선생님도 상담사도 아무도 없다. 경찰조차 케이티, 또는 제이미 둘 중 하나다.

내 주변에도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군대, 육아휴직, 여성할당제, 연애에서의 우위까지,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나는 스무 살 중반까지 열심히 싸우다가 지금은 포기했다. 지금은 그 단어를 꺼내는 사람과 다시 만나지 않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한다. 그래도 충분히 나에게 친구는 많고, 인생은 즐겁다. 하지만 부채감과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평등은 요원한데 혐오는 더욱 짙어지는 이 세상에서, 남녀 임금 차별은 OECD 국가 중 최고이고, 집안일은 여성이 남성보다 7배를 더 하는 세상에서, 15시간마다 한 여성이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위협을 당하는 이 세상에서, 역차별을 말하는 남성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여성이 일자리를 더 쉽게 잃는 이 세상에서, 제이미를 살리고 케이티를 죽이는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이런 드라마가 이토록 공 들인 촬영 기법으로 나오고 주목을 받는 것에 과연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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