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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Feb 23. 2023

기대는 금물, 중소기업 연봉협상

새해마다 통보받는 직장인의 운명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년 하게 되는 연협상은 숙련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직장 생활의 절반 이상은 사원으로서 통보받았고, 지금은 중간관리직에서 조금 더 일찍 통보받는 위치가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 기는 개뿔, 이 모든 것은 언제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에게 가장 불합리하게 짜인 형태라는 생각만 들뿐. 무엇보다도 나 외의 팀원들 연봉까지 같이 협의하다 보니 결론은 하나였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것.


중소기업 연봉은 대기업 60%, 즉 2배가량 차이가 난다. 대기업을 가본 적 없는 중소기업 직장인 10년 차로서, 솔직히 사회 초년생일 때는 중소기업에 입사해 빠르게 경력을 쌓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중소는 초봉이 낮은 대신 연봉 상승률이 높은 편이라 10% 초중반부터 많게는 25%까지도 인상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상승률이 가능한 건 초봉이 그만큼 말도 안 되게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이라도 시작점은 낮지만 주임, 대리쯤 되었을 때는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그래도 먹고살 수는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


다만 그건 정말 작은 회사에서 사장의 마음에 쏙 들었을 때, 또는 팀 인원이 정말 적어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일을 해야 할 때 가능한 상황이다. 어중간한 규모의 회사는 일단 인상률을 대표가 임의로 혼자 정하기도 어렵고, 전체 인원에게 형평성 있게 연봉협상을 해주어야 하는 이슈가 있어서 획기적인 연봉 협상이 불가하다. 이걸 알게 된 이유는 내가 중간관리자로 있게 된 지금의 회사가, 비교적 작은 규모에서 중간 규모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패션이나 잡지 쪽은 신입의 초봉을 최저임금에 맞춰 주는 것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그쪽을 꿈꾸는 친구들이 ‘나는 평생 최저임금으로 살겠습니다’하고 맹세하고 들어온 게 아닐 텐데도, 이미 형성된 시장가라는 건 변하기가 어렵고 신입은 넘쳐나기에 암묵적으로 그 이상을 원하는 신입은 면접 결과가 좋더라도 입사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신입은 본인의 연봉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 제시가 어렵기에, 대부분은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오케이 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문제점은, 초봉이 한번 정해지면 중간규모 이상의 회사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퍼센티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평균 연봉 인상률은 5~8%, 초봉이 낮다는 걸 감안해서 올린다 하더라도 10~15%이다. 매년 물가상승률은 3.9%, 최저시급 인상률은 5%. 최저시급에서 시작한 연봉은 매년 평균치보다 조금 웃도는 인상률로 인상된다 해도 최저시급보다 5% 정도 앞서게 된다. 편의점에서 매일 8시간을 일하는 것보다 월급을 15만 원 정도 더 받는 삶이다.


2년 차 팀원에게 연봉 인상률을 통보하며 10%라는 게 회사 차원에서는 사실 많이 올려주는 연봉 인상이라는 것을 설명할 때 정말 많은 회의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팀원이 그걸 왜 당연하게 감내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연봉협상 이전에 그 친구는 이미 이 사태를 스스로 직감했고, 팀장인 나에게 계속 10% 인상은 사실 본인에게는 연봉이 올랐다 할 수 없다는 점도 어필했다. 평균적인 연봉 인상률이 10%쯤이라는 것을 듣고 미리 계산을 해볼 정도의, 신입 치고는 꽤 똑똑하고 앞가림을 할 줄 아는 친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신입일 때보다 그는 더 똑똑한 협상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며 팀원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연봉 협상은 팀장인 나에게도 사실 협상이 아니기에. 통보를 그들보다 좀 일찍 받고 팀원에게 대신 통보할 것을 지시받은 메신저일 뿐이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16년도에 조사한 잡코리아 설문에 따르면 신입사원 중 여성의 32%는 적성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입사를 결정하고, 남성의 27%는 연봉이 높아서 입사한다. 여성 직원이 90% 이상인 패션계에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산업군의 분위기는 아마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는 솔직히 말하면 젊은 여성들이 이 연봉을 오케이 하고 패션계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이다. 적성이 맞으면야 좋지만 1순위는 돈이 되어야 한다. 돈을 '조금' 못 벌어도 적성에 맞는다면야 괜찮을 수 있다. 많이 못 버는데도 적성에 맞아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싸게 갈아 넣을 수 있는 신입이 더 이상 없어져서 이 업계가 정신을 차리는 날이 오기를. 팀원에게 차마 이 얘기를 해줄 수 없어서, 그를 설득해서 이 연봉에도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어서, 나도 이 업계의 한 톱니 역할을 하고 있어서 속상한 새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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