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 손!

by 떼굴


드디어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반가웠다. 무엇보다 정서 성장판이 열린 것 같아 기뻤다. 나를 향한 딸의 관심이 온통 남자 친구에게 옮겨 가길 기대했다. 그러나 딸의 연애 패턴은 어쩐지 남자 친구와 나 사이에서 양 다릴 걸치는 느낌이었다. 남자친구가 생겨도 여전히 엄마를 불안해하는 딸이 마음 아팠다.


남자친구를 남편으로. 딸이 결혼을 선언했다. 오래 만났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다양한 연애경험을 기대했던 나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었다. 아쉬움은 딸의 삶이 내 삶과 닮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내 입에서 불안이 튀어나왔다. 평생 엄마 랑만 살겠다더니 벌써 결혼하려고? 이제 용돈 좀 받아보나 했더니 억울하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농담이었다. 축하해라는 말을 앞선 이상한 농담을 들은 딸의 얼굴이 싸늘했다.


직장인의 결혼 준비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아무래도 내가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딸은 한사코 내 도움을 거절했다. 딸과 헤어지는 현실에 적응이 필요했다. 그게 혼수를 고르는 시간이었다. 그런 속내를 모르고 막무가내로 거절만 하는 딸이 야속했다. 가장 축하받고 싶은 사람에게 싸늘한 농담을 들었으니 마음을 닫은 건지도 모른다. 자격지심에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답답했다.


내 새끼들 결혼 적령에는 남의 결혼식장 분위기를 더 꼼꼼히 살피게 된다. 딸이 결혼의사를 밝힌 뒤부터 특히 혼주석에 눈길이 갔다. 전 남편은 현 배우자를 혼주석에 앉히겠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직 화 낼 일이 남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전남편은 그 말 때문에 딸에게 절연을 선고받았다. 예비신랑을 인사시키는 자리에서 자기 입장을 무안하게 만든 아빠. 딸은 두 번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엄마! 내가 남편 역할도 하고 자식 역할도 할 테니까 나 버리지 마. 나 결혼 안 해도 돼. 어느 날 만취해 들어온 딸은 나를 끌어 앉고 아이처럼 울었다. 딸을 버리는 엄마가 어딨어. 딸을 달랬지만 단장이 토막토막 끊어져 내렸다.




딸은 비교를 싫어했다. 너는 뒤처지지 않았어. 생각해 봐. 결혼했지, 직장 있지, 전세지만 제대로 된 집도 있잖아. 결혼 못한 사람도 있고 직장 없는 사람도 많아. 그 정도 출발이면 괜찮은 건데 왜 그래. 그중 하나, 심지어 아무것도 못 가진 사람도 있을 거야.


비교하지 마.


겨우 결혼 2년 차인 딸은 매일 불행을 입에 달았다. 그러면서 아이 이야기는 입 뻥끗도 못하게 했다. 아이를 갖기에는 사회와 현실이 끔찍하단다. 불행을 가불하고 있는 딸에게 위로라고 전한 말은 오히려 딸의 신경질을 돋웠다. 딸의 미래는 과거를 이해시키는 일보다 훨씬 더 막막했다. 산 넘어 산이다. 비교라고 다 나쁘냐. 바로미터는 아니지만 척도가 되는 건 사실이야. 기준을 잡아야 자신이 처한 위치를 조율하지. 무턱대고 비교라 몰아 어떡해. 싫어 그래도 하지 마.


혐오가 된 비교. 청년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경쟁 현실을 살며 불안을 키우는 사회에 대한 불만. 사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공부 외에 다른 건 안 해도 행복할 것처럼 믿게 만든, 주체적인 기준을 심어주지 못한 나, 또는 우리, 부모들 모두의 잘못이 아이들에게 나타난 거라 생각한다. 내 딸도 예외 없이.


딸은 불안에 둘러싸여 본인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 줄 잊었다. 딸이 자기 본질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딸이 받은 상처를 애도한다. 충분한 애도가 죽음 이별이라는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이듯 부모로부터 비롯된 상처에도 애도가 필요하다. 딸의 본질을 훼손한 모든 행동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죄한다.


한 사람의 정서 가장 아랫단에는 부모의 역할이 있다. 딸이 흔들리는 건 내 역할이 흔들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계획을 세우고 있는 딸의 흔들림을 잡아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기를 갖기 전 불안으로 흔들린 진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모두의 삶은 번잡하다. 삶의 번잡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유전자가 녹아 있는 혈통을 기본으로 형제 학교 직장 커뮤니티 등 다수의 개입과 중층으로 얽힌 삶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걸 혼자 풀어보겠다는 부모의 과욕에서 이제 내려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현자의 말을 빌어 뒤로 한 발 물러선 내가 할 일은 정확하다. 딸의 등에 손바닥을 대주는 일. 산에 오르다 숨이 깔딱 일 때 뒤에 선 누군가 등에 손을 대면 밀리듯 앞으로 나갈 힘이 생겼던 경험처럼, 결혼으로 나와 분리된 딸도 내 손바닥 체온을 전달받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불안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