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으니은 Mar 24. 2022

애정을 담아

각자의 자리로

 내 것이 되고 나면, 그저 놓여있는 물건이 아닌 애정과 추억이 묻은 물건들로 각자의 자리를 잡게 된다. 잘하는 건 많지 않지만, 그중 조금은 잘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이 공간배치! 또 이걸 잘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건을 참 잘 쓰는 것이다. 글이 길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나의 공간배치에 대해서만 적어본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다. 방 한켠 서랍장과 벽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놀이공간으로 만들었고,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마당과 작은 텃밭이 있던 주택에서는, 집 본체와 따로 떨어져 있는 기름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또 다른 나만의 집으로 꾸며 놀기도 했다. 기름 보일러실에서 놀고 있다니.. 등짝 스메싱 각이지만, 그 보일러실에는 창문도 있었고, 여름날. 우리 집 정원의 포도나무잎들이 살랑거리며, 화창한 날씨가 창문으로 들어와 눈이 부셨던, 아직도 기억나는 행복한 순간이다. 대청소 날에는 한 번씩 방 배치를 바꾸는데, 낑낑거리며 책상도 옮기고 침대도 돌리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먼지를 싸악 닦아내고 나면 그렇게나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청소의 시작은 매번 툴툴댔었다.^^;


 지금 내방도 참 잦은 이동이 있었다. 책상을 어느 쪽으로 붙일 것인가. 여러 번 돌리다 창가를 등지고 공간을 둔 후에 방 가운데 쪽으로 밀어내었다. 쉽게 연상되도록 말해보자면, 회사 사장님 방에 들어서면 문과 마주하는 사장님의 책상이 보이지 않은가? 그런 배치이다. 책상을 벽으로 붙이지 않았다. 다만 책들을 기대어 둬야 해서 책상 오른쪽만 벽에 붙여두었다. 창문엔 커튼보다 깔끔한 느낌의 블라인드를 달았다. 점심시간부터 저녁까지 내 뒤통수와 등 뒤로 햇살이 들어오는데,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책상에 가득 담으며 일을 할 수 있다. 일하기에도, 딴짓을 하기도, 커피를 마시기에도 좋은 배치라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할 듯싶다.


 집안 각 공간마다 제법 고심해서 가구들을 배치했다. 거실 소파를 나눠, 서로 정면으로 보게 한 후 카펫을 깔고, 가운데 무릎 높이의 테이블을 두어 거실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거실을 두영역으로 나눈 느낌이 되었다. 아마도 티브이가 없어서 더 공간 배치가 자유로운 듯싶다. 한쪽은 부엌 근처 식탁이 있는 다이닝룸, 한쪽은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자기는 이런 배치는 생각도 못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런 맛에 소파를 번쩍번쩍 들게 된다. 

 계절에 따라 기분에 따라 요리조리 옮기다 보면, 가끔은 여행 온 숙소 같은 느낌도 잠깐씩 들고, 평범하던 공간이 근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집순이가 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보다 심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