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만 하면 뭐하나?
아주 아주 예전에 사진을 좋아했다.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 갔는데, 사진 이야기는 않고, 사진"기" 이야기만 한다. 일단 사진기가 "후지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대화에 껴주지도 않을 기세다. 그때부터 사진은 홀로 찍기 시작했다.
스키를 좋아했다. 역시 장비부터 사야 하고, 백 만원이 쉽게 넘는다. 가난하게 스키 탔다. 사진 좋아하던 것보다 좀 더 좋아했고, 사진 좋아할 때보다 좀 더 맘이 강해졌다. 장비 이야기하는 부류들과 따로 놀며 홀로 리프트 타고 스키를 즐겼다. 미국 갔더니, 동지들이 많다. 심지어 청바지에 비옷 입고 스키 탄다.
컴퓨터 좋아한다. 가끔씩 노트북 뭐 쓰냐고 물어본다. 이건 못 보던 브랜드인데 어디꺼냐고 한다.
면접을 보면 취미에 "독서"라고 적은 사람들이 차~암 많다. "최근 석 달 사이 읽은 책이 뭐냐?"라고 물어본다. 답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다시 묻는다. "그 책에서 뭘 얻었냐?" 그 책 내용도 모르는 사람이 제법이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는 이런 대답까지 다 해 오겠지만...
한 달에 책 몇 권 산다는 걸로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책 산 걸로 끝인 하위 부류가 있고, 책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 책 읽은 거 맞나? 싶은 상위 부류가 있다.
난 이사할 때 괴로워서 책을 계속 줄이고 있다. 버리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고, 빌려가서 안 가져다주는 거 방치하기도 한다. 요즘은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법도 생겼다.
책 읽은 걸로 자랑 그만 하면 좋겠다. 읽은 대로 사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덜 읽어도 되고, 덜 공부해도 된다. 오늘 마침 이런 기사가 떴다. 기사 내용 중 일부만 가져온다.
"지금 이 나라 상황을 보면, 이 나라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나라예요. (...) 누군가는 그냥 사기 한 번 제대로 쳐 가지고 최고 권력이 돼 가지고 투표 한 번 거치지 않고 나라를 집어삼켰잖아요. 뭐 공부가 필요합니까? 사기 한 번 잘 치면 되는데."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지금 저러고 있는 거다. 책도 꽤나 읽었을 거다.
종교 개혁 500주년 기념일이 다가온다. 성경을 읽자고 종교 개혁을 했다. 라틴어 성경, 신부들만 읽던 성경을 이제 다 같이 읽자고. 그렇게 읽고 그다음 그렇게 살자는 것이다. 신부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고, 성경과 양심에 비추어 살려고 성경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 책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저자의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수도원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별천지에 살고 있지 않다. 전쟁과 질병, 차별 속에 살고 있다.
성경 또는 책을 읽었다면,
공부를 했다면,
그 배운 것 대로 살아가야 한다.
읽는 속도,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좀 멈추고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디언들은 급히 말을 타고 가다가도, 멈추어 꼼짝도 않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쫓아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성경 읽고 묵상하는 것 좋다!. 그러면 묵상한 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땅에서의 삶을 외면한 채, 묵상만 하는 삶이 정상일까?
내 딸아이가 "아빠가 너무 좋아요"라면서 24시간 나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않는다면 그게 정상일까? 난 그런 딸의 삶이 하나도 기쁠 것 같지 않다. 하늘 아버지는 과연 이런 걸 기뻐하실까?
그만 읽어도 된다. 충분히 읽었다. 읽은 대로, 배운 대로, 그렇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