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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준 Jan 26. 2021

추억 속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들로 바람으로

할머니의 진주 도동 옛집엔 사람 냄새가 진했다. 부산에 살다 진주로 이주했던 할머니는, 그 집에서 하숙을 쳤다. 할아버지는 늘 단정하게 앉아 계셨다. 6살때쯤, 할아버지와 진양호 동물원에 갔었다. 솜사탕을 사들고, 석양이 진하게 내릴 때 쯤 할아버지는 갑자기 나이어린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여기서 자고 가자." 겁이 많았던 나는 할아버지와 외박을 하다가 엄마한테 혼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동물원이 폐장하기까지 앵무새며 코끼리를 보러가자고 돌아다니던 할아버지의 소매를 붙잡고, 도동으로 돌아가는 시내버스에 탔다. 어른들은 두고두고 겁보를 놀렸다.

할아버지는 96년쯤 많지 않은 나이에 별세하셨다. 뒤늦게야 병명이 장기부전에 폐렴 합병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3일 간의 초상 중에 가장 진하게 기억이 난 것은 할머니의 꼿꼿함이었다. 지방에서는 아직 집안에서도 장례를 모시던 시절이었다. 장정들이 관을 모시고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누군가는 할머니가 독하다고 했고, 나도 썩 동감했다. 할머니는 정말 초연하고도 씩씩하고 곧은 분이었다. 그게 영가를 편히 보내려는 불자의 신심일 법도 했겠으나.

할아버지를 보내드린지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독방이 돼버린 도동 집에서 엄마와 할머니와 밤에 TV를 켜둔채 자면서 할머니가 갑자기 농반진반으로, "내 죽으면, 어디 머무르게 하지 말고 절에 뿌리면 여기저기 날아다닐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양반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 나는 으레 종교적인 수사이겠거니, 했다. 불가에는 지수화풍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땅으로, 물로, 불로, 그리고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두어 달 전에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뵈러가서, 비쩍 마른 손을 잡았다. 아흔아홉의 그분은 동화책을 편안히 읽어주는 듯한 그 예전의 정정함을 더는 과시하지 못하고, 나직하고 쉰 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많이 보고싶었다."  갑자기 나는 노인네에게 개념없는 농담을 했다. 누가 제일 보고싶냐고. 엄마도, 너도, 막내아들도 보고싶다고. 할아버지는 생각 안나냐고 묻자 "곧 볼테니 별로 안보고잡다"고 했다. 그순간 직감했다. 이제 바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시는 것 아닐까.

돌이 조금 안되는 증손자의 사진을 보여드리자, 안녕 하고 손을 흔드신다. 반가운 얼굴을 맞대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것으로 해소하신 것일까.

할머니는 예전 할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처럼 지독했다. 일체의 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을 선택하셨다. 남은 자에게는 그것만큼 섭섭한 일이 없다. 하지만 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할머니를 기억할수 있지 않을까 일부러 되새겼다. 추억 속으로 가신 할머니는 이제 내 마음에, 꿈에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사랑하는 이들을 더욱 아끼고 보듬도록 언제나 격려하고 붙들어 주실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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