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여행을 못 간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니 점점 금단현상이 오고 있다. 하늘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만 봐도 가슴이 촉촉해지고 냉장고 열 때마다 문에 붙은 기념품 자석을 아련하게 쓰다듬게 된다.
파인애플 자석, 코알라 자석, 에펠탑 사진, 카파도키아 사진...
새벽 일찍 일어나 졸음과 설렘 속에서 바라본 인천공항이 그립다.
수많은 인종이 데칼코마니처럼 섞여 뱀처럼 길게 이어진 출국 심사대가 그립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피부에 와 닿는 그 나라의 온도와 습도,
환전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바가지 안 쓰려고 유심 가게 앞에서 핸드폰으로 검색할 때,
그때 미속 카메라처럼 나만 빼고 주변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그 묘한 긴장감이 그립다.
호텔에 도착해서 한번 둘러보게 되는 로비의 풍경과
벨보이를 따라 엘리베이터 탈 때 괜히 어색함을 지우려고 한번 웃게 되는 그 순간이 그립다.
숙소에 도착해서 창문을 열었을 때,
햇살 쏟아지는 그 나라의 풍광을 만끽하며
드디어 여기 왔구나!
실감하며 크게 숨을 들이마실 때 그때 그 느낌이 그립다.
내 유일하다시피 한 취미는 ‘여행’이다. 어렸을 때부터 틈만 나면 비행기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게다가 드라마 PD라는 내 직업 특성상 나는 한 번에 몰아쉰다.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거의 1년 정도(미니 기준) 주말도 없이 일 하는데 나중에 대휴나 연차 휴가를 한꺼번에 몰아 쓰면 다른 회사원보다는 조금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 그게 몇십 년 쌓이다 보니 지금까지 갔던 곳이 (스톱 오버나 레이 오버까지 포함하면) 30개국 훌쩍 넘더라.
그렇게 많은 나라 다닐 정도면 돈이 많냐고? 노노... 절대 그렇지 않다. 예전에 내가 쓴 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돈이 없어서 정말 별 희한한 일들 도맡아 했던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의 여행은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뉜다. 후자는 ‘보상 여행’이다. 그게 뭐냐고? 그동안 드라마 만드느라 고생한 나를 위한 힐링 여행이기도 하지만, 남편 그리고 아빠 노릇을 평소에 잘 못하기에(집에 자주 못 들어와요) 아내와 딸에게 바치는 ‘희생 여행’이기도 하다. 이혼 안 당하려면 이때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에 나는 운전사, 플래너, 관광가이드, 보디가드, 레크레이션 강사, 짐꾼, 지역 맛집 탐색가(이게 제일 힘들다. 만약 맛없으면 딸은 투정하고 아내는 째려본다. 나도 처음 가보는데...ㅜ) 등등 일인다역을 해야 아니 '해내야' 한다. 아내와 딸은 나와는 달리 여유 있고 편안한 여행을 좋아하기에 나는 철저히 두 분에게 맞출 수밖에 없다. 설령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도 감독질이야?”
현장에서도 감독질 안 하는데 아내는 늘 이런 식이다. 어디서 쌍팔년도 감독을 생각하나 보다. 울컥~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여행지에서는 철저하게 ‘을’ 이니까. 그래서 ‘을’컥~ 나는 눈물을 삼켜본다.
'아내질' 당하는 내 모습
하지만 결혼 전, 20 때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앞서 말했듯이 다소 무모하게 돌아다녔다. 감히 니체의 말을 빌자면 ‘초인’ 여행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원초적인 자아(ID)와 초현실적인 자아(SUPER-EGO)가 현실의 자아(EGO)와 싸워서 이기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이상하게 해외만 가면 내가 몰랐던 또 하나의 자아가 ‘하이드’처럼 내 안에서 튀어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바에 가면 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고,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진다. 다소 위험한 레저도 즐기고 괜한 모험심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썰을 풀겠지만... 티저 용으로 짧게 말하자면 밴쿠버에서는 노숙자들이랑 밥 먹으러 돌아다녔으며, 캄보디아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상가옥에서 10명 넘는 현지인 가족들이랑 같이 잠을 잤다. 뉴욕에 있을 때는 ‘1달러 샵’에서 산 잼과 식빵만으로 일주일 넘게 버티다가 아사할 뻔한 적도 있다.
“사서 고생하네~”
내 썰을 들은 친구들은 배를 잡고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에 백번 공감한다. 괜한 호기심에 슬럼가를 배회하다가 부랑자들에게 위협받은 적도, 갑작스러운 쿠데타에 공항에서 실사 ‘터미널’을 찍은 적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별 탈 없이 (배탈은 많이 났지만) 여행한 것은 천운이다. 결혼 전 나는 젊었고 또 어리석을 만큼 무모했다. 아무 데서나 잘 잤고 또 아무 거나 잘 먹었다. 입 안의 프라그는 내 친구였고 묵은 때는 또 하나의 담요였다. 아마 지나가다가 날 본 사람은 동전 하나 주고 갔을 지도, 신앙심 깊은 사람은 성호를 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난 좋았다. 힘들어도 딱 힘든 만큼 채워지는 추억이 있어서 좋다. 너무 고생해서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가도 인천공항에 내릴 땐 내 인생이란 '부루마블'에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다음엔 어딜 가야 재밌으려나~~
물론 살아 돌아와서, 그것도 몸 건강히 돌아와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냐고 누가 물으면 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여행만큼 중독성 쩌는 건 또 없다. 그 나라의 언어, 그 나라의 문화, 그 나라의 음식을 즐기며 자유롭게 떠돌며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 희로애락, 인생의 축소판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이다. 그래서 내겐 타지에서 내딛는 한 순간, 한 걸음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그렇게 몇십 년 살던 사람이 2년 가까이 여행 못 가자 금단 현상이 중증이 되어버렸다. 브런치에서 여행 관련 에세이를 찾아 탐닉하게 되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세계 테마 기행>을 습관적으로 틀어놓는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예전에 썼던 여행 일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읽어보니 진짜 여러모로 웃프더라. 혼자 보기 조금 아까워서 총 10편 정도로 묶어서 여기에 공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틈날때마다 여기에 올리겠다.